"사람만 우선일까요? 불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그 아이들은요."
지난 23일 온 산이 타들어 가던 경북 의성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섰다. 연기 자욱한 숲길 끝에서 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생명을 하나 둘 찾아냈다. 뜨거운 쇠 목줄에 목이 데고, 몸 이곳저곳 화상을 입은 개들과 얼굴이 그을린 고양이들, 만삭의 어미 개는 그 자리에서 미처 움직이지도 못한 채 화마에 노출돼 있었다.
단체 '루시의 친구들'과 함께한 동물 구조팀은 총 24마리의 생명을 구조했다. 그중에는 축사에 갇혀 화상을 입은 염소도 있었고, 새까맣게 타죽은 개와 닭들도 있었다. 하지만 구조된 이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더 깊은 산 속, 철창 너머에는 수십 마리 개들이 여전히 연기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곳은 불법 개 농장이었다.
당시 구조에 나선 단체들은 "산속 개 농장에서 100마리가 넘는 개들이 음식쓰레기 더미와 함께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개들은 모두 산불의 직접적 위협에 놓여 있었지만, 농장주는 구조를 거부했다.
한 구조 활동 참여자는 "수의학적 판단으로 화상 개 일부만 겨우 구조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둬야 했다"며 "우리가 구조하지 못한 생명이 여전히 불길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구조단체들은 이 불법 개 농장이 ASF(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위험지대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의성군은 이미 올해 초 감염 멧돼지가 발견된 지역인데 음식쓰레기차가 매일 드나들며 감염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구조팀은 경악했다고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 김영환 정책국장은 "산불이 끝이 아니라 방역 재난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며 "지금 이 상황을 방치하면 의성군 전체가 또 다른 재난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성군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65세 이상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된다. 사람이 대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동물은 더욱 놓치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 많은 행정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동물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구조단체들은 "재난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현장에서는 '사람이 먼저 아니냐'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묻혀버린다"며 "하지만 2022년 행정안전부는 '재난 시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대응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한 바 있고, 이제는 말뿐인 매뉴얼이 아닌, 실질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서 코리안독스 김복희 대표는 "의성군은 반려동물 놀이터까지 갖춘 '펫월드'를 운영하는 곳"이라며 "하지만 정작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위한 대응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다.
동물 구조단체들은 이번 산불은 단지 산림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조되지 못한 생명, 방치된 불법 사육장, 그리고 무대책의 방역 사각지대까지 이 모든 것이 다음 재난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성의 한 구석에서, 철창 안에 남겨진 개들은 연기 속에서 숨을 참고 있고, 우리는 그 아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산불 진화가 끝나면 의성군은 반드시 불법 개 농장 폐쇄와 구조활동에 나서야 하고 그래야 다음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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