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의성군 실내체육관. 안평면 주민들의 삶은 '임시거처'라 불리는 천막 속에 갇혀 있다. 낮에는 인파로 북적이지만, 밤이 되면 찬 공기와 고요함만이 천막을 감싼다.
"60년을 살았는데,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어요. 사진 속에서만 집이 남았네요." 70대 김모 씨가 불이 나기 전에 찍어둔 마을 사진을 들여다보며 울먹였다.
천막 안에 웅크려 있던 박모(82) 씨도 한숨을 쉬었다. "도와주는 손길도 고맙지만, 밤이 되면 외로움이 더 깊어요. 자식들도 멀고, 병원 갈 돈도 없어요…."
체육관 안에는 천막 50여 개가 마련됐지만, 고령의 주민들이 머물기엔 불편한 장소다. 사춘기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도 한 천막 안에 온 가족이 모여 생활하기란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산불은 집만 태운 것이 아니었다. 축사와 밭, 생계 기반마저 쓸어갔다.
의성읍에서 염소 30마리를 키우던 윤모(72) 씨는 "가축을 끌어낼 틈도 없이 불길이 번졌다"며 "시골이라 보험도 못 들었는데, 이젠 다 끝났다"라고 허탈해했다.
요양시설 거주자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도 역시 과중한 업무에 지쳐가고 있었다. 한 사회복지사는 "고령의 어르신 수십 명을 챙기며 생필품부터 의료까지 다 맡고 있다"며 "정신적으로도 버겁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회복지사는 "집을 잃고 떠나온 어르신들의 사연들 하나하나가 너무 절절해서 감정이 무너질 때가 많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주민들은 임시 거주지와 구호물품보다는 근본적인 복구 대책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단순한 집 복구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도 관계자는 "긴급생활비와 주택 복구비 지원을 최대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생계 회복을 위한 대책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24일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그는 "뜻하지 않은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불편함 없이 지원이 이뤄지도록 세심히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의 방문을 주민들은 크게 반겼다. 한 권한대행은 이재민 대피소 곳곳을 방문하며 현장을 확인하고 주민들과 봉사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힘내시라"고 격려했다.
한 권한대행의 격려에 80세를 넘긴 한 이재민은 눈물을 흘리며 "바쁘신 와중에 너무 감사하다"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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