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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조두진] 보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한국인에게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중 어느 쪽 어감(語感)이 좋으냐고 물으면 '진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보수는 왠지 고여 있는 느낌이고,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탓인지 모르겠지만, 보수적임에도 스스로 보수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진보 성향이 아님에도 자신을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으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수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진보'로 여기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을 '진보'로 여기고, 경상도 사람들은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파=보수' '좌파=진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기 국민제헌의회(1789~1791년)에서 나왔다. 당시 의회에 앉은 자리가 우연하게도 급진파는 의장석에서 볼 때 왼쪽에, 온건파는 오른쪽이었다. 그런 이유로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온건파(우파)든 급진파(좌파)든 모두 '진보'였다.

사회적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는 특정 사회의 현존 이념과 체제를 감싸느냐, 배척(排斥)하느냐로 구별된다. 가령, 현재 한국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수란 전체주의 이념과 사회주의 체제를 감싸는 태도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보수=우파' '진보=좌파' 등식이 어느 사회에서나 성립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앞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한국 사회에 한정해 보자면, 우파는 '더 많이 성장하는 방향'을, 좌파는 '더 많이 나누는 방향'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파는 분배에 관심이 없고, 좌파는 성장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점(傍點)을 어디에 찍고 있느냐가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개념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꽃은 나를 위해 핀 것이 아니지만 그 꽃에 감사하는 것, 내 잘못 탓에 꽃이 시드는 것이 아니지만 그 시듦을 안쓰러워하는 것, 말하자면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내 선택도 내 잘못도 아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일로 긍정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내 선업(善業)에 따른 보상이 아니므로 겸손한 태도로 나와 이웃을 바라보는 것, 그런 것이 보수주의자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책임, 명예, 원칙, 정직, 개인의 자유, 애국심, 역할과 분명한 보상(공짜 거부감), 예의와 사회적 규범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보수' 하면 '수구(守舊)'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수와 수구는 다르다. 둘 모두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지만, '수구'는 시대와 상황이 변했음에도 '옛날에 옳았던 방식' '옛날에 성공했던 방식'을 고집하는 태도를 말한다. 반면 '보수'는 옛것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인위적 파괴에 거부감을 느끼는 태도를 말한다.

보수주의는 '현존 파괴를 통한 발전'이 아니라, '발전을 통한 과거와 작별'을 희망한다. 철기(鐵器)의 도래로 석기시대(石器時代)의 퇴색을 바라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돌멩이를 모조리 내다 버림으로써 철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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