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길도 무섭고, 집 잃을까 더 무서워"… 정전 속 망연자실한 안동 길안면 이재민들

의성 산불, 안동 길안면으로 번져
정전·강제 대피에 주민들 불안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의 모습. 김영진 기자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의 모습. 김영진 기자

"불빛이 꺼지고, 마음도 꺼진 기분이었습니다. 집이 무사할지 모르겠어요."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와 금곡리 일대는 전기가 끊긴 채 정적에 잠겨 있었다. 산불이 마을 코앞까지 번지면서 전력 당국은 안전을 위해 오후 2시부터 백자리와 금곡리 일대의 전기 공급을 차단했다. 전깃불이 꺼지고 냉장고와 TV도 멈추자 마을은 말 그대로 고립됐다.

이어진 건 재난 문자였다. '즉시 대피하세요', '묵계1리, 만음1리 주민은 길안초로 이동 바랍니다' 등 20~30분 간격으로 울리는 재난 알림에 주민들은 짐을 꾸릴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같은 날 길안초 체육관. 돗자리를 깐 바닥에 모인 이재민 10여 명이 서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텐트도, 칸막이도 없는 공간. 손에 쥔 건 물 한 병과 휴대전화뿐이었다. 외투도 없이 웅크린 자세로 모인 이들은 집을 두고 나온 아쉬움과 불안으로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집 닭들 지금쯤 괜찮을까요?"

백자리 주민 70대 조모 씨는 연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피를 안내받고도 끝까지 집을 떠나지 않던 그는 시청 공무원과 경찰의 설득으로 겨우 나왔다.

그는 "닭은 말도 못하는데 대피하면서 계사에 문은 열어 놓고 나왔지만 잘 도망들은 갔는지 걱정이고, 전기도 안 들어 온다는 데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화재가 확산 중인 길안면 일대는 약 3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동시는 현재 200여 명의 시민들이 대피한 상황이고, 이 중 136명에 대해서는 경찰과 소방이 강제 대피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 주민들은 농산물 저장고, 가재도구, 반려동물 등을 지키고자 끝까지 버티는 중이고 이 과정에서 다툼도 있었다.

안동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계속 원래 집으로 돌아가려 하시고 재산과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상황"이라며 "더 나은 숙소를 마련해 안심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25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야산에서 소방대원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25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야산에서 소방대원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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