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산에서 산으로 불씨 '휙'…비화 현상에 청송·영양·영덕 초비상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대를 이어 살아왔던 집을 놔두고 도망가야 한다니"
만휴정·묵계서원에도 불길…문화재 피해 안심할 수 없어
안동 시내 덮친 메케한 연기…전 시민들에 대피령 떨어져
청송 읍 소재지까지 불 확산 …영양·영덕 등 교통통제·대피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에서 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진하면서 안동·청송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안동 길안면, 풍천면 등 산불 주변 전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고 소방 인력까지 화마를 견디지 못해 철수하는 초비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산림 당국은 산에서 산으로 '휙' '휙' 불이 옮겨 붙는 비화(飛火) 현상과 지형적 요인 등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피해 확산과 사태 장기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속수무책 '괴물' 산불

25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24일 오후 5시쯤 의성군과 안동시 경계인 길안면 백자리·현하리로 번진 산불은 25일 오후까지 415ha의 산림을 태우는 등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도깨비불'로 불리는 '비화(飛火)' 현상으로 안동까지 확산했다. 산불 불기둥으로 상승한 불똥이 초속 10~20m의 강풍을 타고 수십m나 수백m를 날아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불을 만들어 냈다.

산지인 의성과 안동지역의 지형도 진화를 더디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진화 요원들이 직접 불길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어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현지 산은 바싹 마른 상태에서 타기 쉬운 나무와 낙엽이 가득해 화약고 역할을 하고 있다.

◆'대피' …'철수' …아비규환

안동시에 따르면 25일 오전 10시 기준 45%의 진화율은 같은 날 오후 3시쯤 35%대로 뚝 떨어졌다. 강풍에 돌풍까지 겹쳐 산불 진화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길안천을 날아 건너 청송쪽 산으로 번지면서 길안면 전체가 화마속으로 빠져 들었다.

25일 오후 5시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이 시간 불길은 길안면 내 문화재를 삼키고 마을을 덮쳤다. 강풍을 타고 확산된 산불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한 신라시대 정자인 '만휴정'과 조선시대 서원인 '묵계서원'까지 번지며 문화재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강한 돌풍에 도깨비 같이 날아다니던 불길은 길안면사무소 인근까지 도달했다. 안동시는 주민들에게 '길안면 전주민들은 즉시 안동 도심지로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길안면 소재지에서도 보이는 불길로 길안면 주민들은 짐조차 챙기지 못한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 결혼이주여성은 거리로 뛰쳐나와 울부짖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연방 기도를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길안면에서 안동으로 연결된 도로는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길안면 소재지 주민 전모 씨는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며 대를 이어 살아왔던 집을 놔두고 도망가야 한다니 서글프다"며 "불길 속에 길안면은 지금 잃어버릴 것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안동 길안면으로 번진 불은 이날 오후 안동 풍천면까지 확산했다. 안동시는 25일 오후 3시 31분 재난 문자를 통해 "의성 산불이 풍천면으로 확산 중"이라며 어담 1리와 2리, 금계리 마을 주민들은 즉시 신성초등학교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산림·소방 당국과 지자체도 강한 바람 탓에 모든 장비와 인력을 철수하고 피난길에 함께 올랐다. 이날 오후 2시쯤 묵계서원과 만휴정, 보백당 종택 등 문화 유산을 간직한 길안면 묵계 마을에는 짙은 연기 띠와 함께 인근에서 날아온 재들이 얼굴에 부딪힐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조성됐다.

오후 3시 30분쯤에는 만휴정 앞까지 덮친 불길에 이 곳을 지키던 진화대원들에게 전원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화선이 연결된 백자리와 금곡리에는 돌풍이 불어 현장 소방력 전체도 긴급 철수했다.

25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경계 지점까지 산불이 확산해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안동 시내까지 밀려 온 연기는 처음"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초대형 산불의 여파는 안동 도심지까지 영향을 미쳤다. 25일 오후 5시 30분 기준 강한 돌풍을 타고 번진 산불 연기가 안동 도심 상공을 뒤덮으면서 시내 주민들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돌풍에 아파트 창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강풍이 몰아치고 있다.

안동시민 김호범(36) 씨는 "밖이 온통 뿌옇고 매캐한 냄새가 들어와 창문을 닫았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유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며 "시내까지 연기가 밀려온 건 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성발 산불이 24일 길안면을 시작으로 25일 오후 일직면과 풍천면 등 안동 전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안동 전 시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안동시는 25일 오후 5시쯤 안전안내 문자를 통해 "관내 산불이 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전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먼저 대피한 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머물러 주시기 바란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특히, 안동시는 "강풍으로 인해 산불이 급격하게 확산 중이다. 풍천면, 일직면, 남후면, 수상동, 수하동 주민들은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대피 바란다"고 잇따라 안내 문자를 보냈다.

25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도로의 낙석 철조망이 산불에 녹아 있다. 연합뉴스
25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경계 지점까지 산불이 확산해 있다. 연합뉴스

◆청송·영양·영덕까지 확산

'괴물 산불'은 청송, 영양, 영덕까지 확산했다. 25일 오후 5시쯤 파천면 지경리 일대에서 산불이 발생해 결국 청송읍 소재지까지 확산됐다.

청송군은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고 청송읍 LPG 배관망 공급까지 중단했다. 이날 오전까지 산불과 약 20㎞ 거리에 떨어져 있던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에도 이날 오후부터 강풍이 불며 불씨가 붙은 것으로 확인됐다.

청송을 태우던 불길은 강풍에 영양 석보면과 영덕 지품면까지 번졌다. 영양군은 오후 6시 47분쯤 석보면 주민에게 영양읍 군민회관으로 대피하라고 대피 명령을 발령했다. 영덕군도 오후 7시 9분쯤 재난안전문자로 '지방도 911호선, 지품면 황장리∼석보면 화매리 구간 교통통제 중'이라고 알렸다.

25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도로의 낙석 철조망이 산불에 녹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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