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책을 내고 싶다고요?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어느 늦은 겨울 밤, 북 카페에서 특강을 했다. 주제는 '책 쓰기'였다. 책을 내고 싶거나 책 쓰기에 관한 팁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일찌감치 만원이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1년에 신간이 몇 종이나 나오는지 아시냐고, 여러분은 1년에 책을 몇 권이나 사느냐고, 만약 당신이 책을 낸다면 몇 권이나 팔리겠냐고. 스티븐 킹이 말했다. "나는 책을 한 권도 안 사면서 내가 쓴 책을 남이 사줄 거라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감소했다지만, 매년 평균 6만 종 이상의 출판물이 시장에 나온다. 6만종이면 일주일에 1천200종의 신간이 쏟아진다는 얘기다. 당신이 책을 내고 운이 좋아 대형서점 신간 매대에 놓였다고 해도 판매량이 우월하지 않으면 1주일 만에 벽 서가로 직행한다. 미안하지만, 당신 책의 운명은 그걸로 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남 탓 할 거 없다. 자신부터 책을 얼마나 샀는지 돌아볼 일이니까.

책을 내고 싶다고, 책을 쓰고 싶다고 찾아온 이들에게 늘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마지막으로 책을 산 게 언제인가요? 놀랍게도 한 달 아니 분기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이가 태반이었다. 그러니 책을 사러 서점에 마지막으로 간 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게 당연한 일. 스티븐 킹의 말대로 자기는 책을 안 사면서 내가 쓴 책을 남이 사줄 거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두 번째, 책을 내면 몇 권이나 팔 수 있을 거 같아요? 처음엔 누구나 자기 책이 잘 팔릴 거라 확신한다. 이런 저런 근거를 대면서 숫자를 구체화 한다. 자신이 속한 단체가 몇 개이고, 총동문회 수석부회장이고, 어떤 모임의 간사고, 어디 연합회 총무이고, 단톡방 사람만 한 권씩 사줘도, 등등 기타 등등. 그렇게 계산하면 1쇄 1천부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것. 내 대답은 간단하다. 예상하는 숫자의 5% 정도가 산다고 생각하세요(대부분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지만). 자신은 아는 사람이 책을 냈을 때 선뜻 구매했는지 혹은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책을 집어들었는지 기억하는 일이 먼저다.

사람들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쉽사리 책을 사지 않는다는 얘기다. 말로야 책 나오면 꼭 살게 사인해주세요, 책 나오면 우리가 좀 사줘야지, 라고 너스레지만 정작 책이 출간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것. 오죽하면 1쇄를 못 넘긴 작가들 모임이 있을라고.

다시 특강 얘기로 돌아가서, 누구나 책을 쓰고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다. 작가가 별건가. 책 내면 작가가 되고, 회사 때려치우고 글 쓴다고 거들먹거리면 전업 작가이고, 1인 미디어지. 그러니 책 내는데 안간힘 쓰지 마시라고 했다. 책 내준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예외를 제외하면 보통의 출판사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치 출간 스케줄을 미리 세운다. 즉 내가 책을 한 권 내기로 마음먹었다고(아니면 너무 책을 내고 싶다) 치자. 돈만 내면 몇 주 만에 원고를 완성시켜준다는 프로그램, 한 두 달 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내준다는 출판사라면 안 봐도 뻔하다고 했다. 그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두고두고 창피할 거라고. 그러니 아무데서나 책 내지 말라고, 가능하면 책 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늦은 시간, 뭔가 얻겠다며 피곤한 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희망이 아닌 절망을 안겼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할 테니까.

영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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