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9시, 경북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 일원.
밤새 불길이 덮친 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까맣게 탄 시멘트 잔해만 간신히 서 있는 거리. 무너진 지붕과 타버린 창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마을 진입로부터 불에 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곳곳엔 시커먼 재와 탄 냄새가 공기를 짓눌렀다.
한 주민이 "제발 살아남으라고 풀어줬다"며 대피 전 풀어놓은 흰 진돗개는 안타깝게도 대피 차량에 치였는지 거리를 배회하다 참변을 당했는지 도로변에 숨진 채 발견됐다. 말을 잇지 못한 주민은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그 앞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입암면보다 더 처참한 곳은 영양 석보면이었다.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 6명 중 대부분이 석보지역 주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석보면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탓에 산불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는 사람들의 기침과 탄식 속에 공포심마저 더했다.
현재 석보면 일대에는 전기가 끊어지고, 기지국도 소실되면서 휴대전화마저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석보면 일대는 이미 수십 채의 가옥이 전소됐고, 폐허가 된 마을엔 적막과 연기만 가득했다. 연기와 잿더미 속에서 현장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은 고요하게 잃어버린 삶의 자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석보면 답곡리 역시 상황은 심각했다.
마을 내 대부분 집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몸만 빠져나왔다.
한 70대 주민은 "내가 백발이 되도록 지켜온 집인데 집도 못 지키고, 선친 묘소 하나도 못 지켰다"며 고개를 떨궜다.
피해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지만 이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불은 바람이 줄어들자 잠잠해졌지만, 이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삶의 불이 꺼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밤새 진화·대피작업을 벌이던 영양군은 산림·소방 당국과 협력해 방화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임시대피소와 이재민 구호물자도 마련 중이지만, 무너진 터전과 이웃을 잃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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