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초대형 산불로 삶의 모든 걸 잃고 하루아침에 '난민' 신세가 된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급히 대피한 안동 주민들은 평생 일궈온 집과 재산을 한순간에 포기해야 했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대로 짐을 챙길 시간조차 없어 급히 차에 몸을 싣고 대피한 주민들은 불길이 따라오는 상황을 떠올리며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다.
26일 오후 3시쯤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는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텐트로 가득 찼다. 체육관 바닥에 설치된 200여 개의 임시 텐트에는 주민들의 주소와 이름이 쓰여 있었다. 텐트 하나에 4~5명의 이재민들이 불길을 피해 겨우 몸을 뉘였다.
대피소 입구 근처에는 안동시보건소와 안동의료원에서 나온 의료진들이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생수, 휴지, 간식 등 생필품을 지원했고, 피해지원반 직원들은 부지런히 구호품을 옮겼다. 안동시청과 안동시의회, 대한적십자사 직원들까지 합류해 구호품 배부에 손을 보탰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모여 앉아 배급받은 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불길이 잡히기를 기다렸다. 안동시 일직면에 살던 박옥남(78) 씨는 평생 정성껏 고친 집을 두고 급히 피신했다. 박 씨는 "5년 전 고쳐 놓고 평생 살 생각이던 집이 한순간에 타버렸다"며 "아껴둔 옷과 신발이 가루가 됐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트럭 뒤에 짐짝처럼 실려 쫓아오는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배갑분(87) 씨는 불이 꺼져도 갈 곳이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배 씨는 "가족들이 서울과 경기도에 있어 신세를 지기 어렵다"며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생활할 수는 없는데 몸 누일 방 한 칸이 없다"고 걱정했다.
이재민들은 예상보다 빨리 불길이 덮쳐 대피 준비조차 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과 농사를 짓던 최준호(57) 씨는 "안내 문자에 적힌 발화 지점이 멀어 여유 있게 준비하려 했는데, 5분 만에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순식간에 깜깜해졌다"고 했다.
박분옥(83) 씨는 "대피를 위해 약을 가방에 챙겼지만, 불길이 너무 빨리 번져 가방조차 들지 못했다"며 "오늘 타버린 집을 보고 왔는데, 빈 땅에 연기만 피어올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어젯밤 내린 대피령에 대피소로 온 김옥자(77) 씨는 10년 동안 애써 키운 나무 1천 그루와 농막까지 모두 불에 탔다며 망연자실했다. 김 씨는 "부산 본집에서 농번기마다 올라와 지냈는데, 하루밖에 일을 못하고 대피했다"며 "농막에는 지난해 에어컨과 TV까지 새로 설치했는데 모두 타버려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대피소 안은 오후 5시가 되자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준비된 저녁 식사는 약 400인분이었다. 안동시의회 직원은 "보조체육관에서 자체 배식이 가능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며 "도시락 지원이 끝나면 체육관에서 직접 배식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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