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이라는 자연 재난에 인간이 맞설 수 없지만 미리 대처하려 애쓰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강풍을 탄 비화(飛火)의 위력이 컸다 해도 대피소 지정과 주민 대피령 등에 우왕좌왕한 게 일부 지자체의 현실이었다. 대형 산불 대응 매뉴얼이 없거나 있어도 이번과 같은 대규모 재난에 무용지물이라는 방증일 수 있다. 이번을 계기로 산불 대응 시스템의 전체적인 재고와 자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의성 안평면에서 촉발된 산불이 영덕까지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진 건 사흘 남짓 만이었다. 순간 최대 풍속 27m/s에 달한 서풍의 위력을 실감한 재난 당국은 시간과의 싸움임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상 상황과 산불이 번져 가는 양상을 종합한 신속한 대피 명령이 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 상당수가 연로한 어르신들이었다고 한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강풍에 불길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고, 불을 끄는 진화대원도 대피해야 할 판이니 무력한 행정력을 집중 난타하기도 곤란하다. 심지어 진화 작업에 나섰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숨지기까지 했다. 헬기 참사에 산림청도 의성에서의 헬기 진화 작업을 중단했다. 진화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가 내려 주길, 바람이 잦아들길 기원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지 모른다.
재난을 이겨낼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방점을 둬야 함에도 아쉬운 점은 적잖다. 고령화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의 현실은 뼈아프다. 2022년 기준 전국 진화대원(9천64명)의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라고 한다. 공중 산불 진화 담당 대형 헬기는 러시아에서 만든 것인데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 3분의 1이 구동 불능이라고 한다. 대피 명령만 내렸지 어느 쪽이 안전하다고 알려 주지 못한 대응도 있었다. 재난 대응 시스템의 현실이다.
안전불감증도 되짚어야 한다. 바람도 강하고 야산 군데군데 불이 붙어 완진(完鎭) 선언이 없었던 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대피는커녕 화마가 집으로 덮칠까 전전긍긍하며 지켜보고 있을 정도였다. 재난 당국이 일일이 찾아가 강권하지 않는 이상 일괄적이고 체계적인 대피가 될지 의문스럽다. 쉽게 집을 떠나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그로 인해 사고 위험성은 높아진다. 재난 당국의 대피 명령에 신속히 따라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6일 "기존의 예측 방법과 예상을 뛰어넘는 양상으로 산불이 전개되는 만큼 전 기관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해 줄 것을 거듭 당부드린다"고 했다. 마땅하다. 여름철 폭우에 정부가 강력한 방재 시스템을 갖추는 것처럼 매년 반복되는 산불 대비 시스템의 전면적 재점검도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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