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2심)에서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는 "(이 대표의) 백현동 발언은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해 허위 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 대표가 "김문기(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와 골프 치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도 거짓말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문기 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 "국토부로부터 백현동 용지 변경을 협박당했다"는 발언을 허위 사실로 판단,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이 이 모두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대선 기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조작된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해당 발언은 '김문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이고, 아무리 확장해석해도 골프 같이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발언을 골프 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검사의 주장은 발언의 외연(外延)을 확장한 것"이라고 했다. 백현동 개발과 관련해 이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리 자료까지 준비해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4단계 상향 조정했다"고 발언했는데, 법원은 이 역시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다.
거짓말을 의견 표명이라는 말로 합리화할 수는 없다.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에 대해 박근혜 정부 국토부는 성남시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공문을 성남시에 보냈다. 이게 어떻게 협박인가. 아무리 '해석'의 묘수를 부려도 '협박'이 될 수 없다. 그리고 1심에서 성남시가 협박을 받았는지에 대한 성남시 전현직 공무원의 증언은 하나같이 '협박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현동 부지가 국토교통부가 요청한 2단계를 넘어 무려 4단계나 상향된 것은 김인섭 씨의 로비에 의한 것이며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결정했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 용도 변경은 국토부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 '인섭이 형'이라고 했고, '허가방'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2심 판결은 이런 사실들을 모조리 무시한 자의적 판결이라고 본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전혀 다른 판결은 동일한 언행이 판사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검은 것이 흰 것이 되고, 흰 것이 검은 것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외견상 검정으로 보이지만 그 아래 흰색 바탕이 있을 것이므로 흰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해석 말이다. 이번 항소심 판결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는 사문(死文)이 됐다. 대한민국 선거는 '누가 누가 거짓말을 잘하느냐' 경연 대회가 될 것이 자명(自明)하고, 법원이 처벌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공직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示唆)한다. 출마하려는 사람들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력을 쌓거나 정직한 언행을 하느라 애쓰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가령, 이웃 돕기 성금을 월 1천원 내고 있더라도 월 1천만원 정도 성금을 내고 있다고 밝혀도 괜찮을 것이다. 그 역시 법을 잘 아는 재판관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선처(善處)해 줄 것이다. 아마 "이웃을 돕고 싶은 선한 마음을 표명(表明)한 것이므로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지 않을까.
부모와 학교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자식이나 학생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 취급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임기응변에 능하라'고 가르치는 게 현실적으로 나을 것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은 오늘부로 폐지(廢止)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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