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입구. 맨발걷기 명소로 통하던 고운사 '천년숲길' 양쪽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황톳길 양쪽으로 검게 타버린 바닥이 이어졌고, 곳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천왕문을 지나 가운루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거센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기왓장과 황토만 가득 쌓여 있었다. 계곡 아래에는 타다 남은 검은 석조 기둥들과 숯덩이가 되버린 굵은 나무 기둥만 전쟁터 유물처럼 뒹굴었다.
관광객들이 즐겨찾던 호랑이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부러진 난간만이 외롭게 서 있었다.
사찰 한 관계자는 "이 곳은 고운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방문객들이 가장 즐겨 찾던 장소"라고 아쉬워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됐던 연수전 역시 기단과 계단만 남아 있을 뿐, 화려했던 단청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2020년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은 조선시대 영조(재위 1724∼1776)와 고종(재위 1863∼1907)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단청과 벽화 수준이 뛰어난 데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도상이 남아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연수전이 있었던 자리에는 거센 불길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린 듯한 일부 담장만 남아 있었다.
범종각이 있던 자리에는 반쯤 갈라진 범종만이 외롭게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두쪽으로 갈라질 듯한 범종은 무너진 기와 사이에서 금방 깨져 버릴 듯 했다.
다행히 현대식 건물로 지은 대웅전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부전 등은 가까스로 제 모습을 지켰다. 명부전은 고운사를 국내 3대 지장사찰로 불리게 한 장소다.
대웅전이 살아남은 건 강풍과 불길이 치솟던 상황에서도 고운사를 지킨 소방대원들 덕분이다. 당시 이 곳을 마지막까지 지킨 건 경산소방서 소속 대원 11명이었다.
이들은 강풍이 몰아치자 잠시 몸을 피했다가 다시 바람이 잦아들자 불이 붙지 않았던 대웅전을 집중적으로 물을 뿌려 살려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측은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고운사의 가운루, 연수전, 극락전 등 주요 전각이 전소된 것으로 파악했다.
다만 일주문, 천왕문, 고불전, 대웅보전,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고금당 등 일부 전각은 남아 있는 상태다.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담화문을 내고 국가유산을 화재로 상실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또한 피해 사찰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해 문화유산 관리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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