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10시 청송달기약수터 입구에 들어서자 가슴이 철렁했다. 불에 탄 지붕이 무너지고 샌드위치 패널 벽면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쓰인 일회용 가스통도 그대로, 뚜껑도 따지 않은 술병 역시 놓여진 그대로 화마를 맞았다.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테이블이 반듯이 놓여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니 모두 식탁과 의자가 놓인 상태로 타면서 살짝만 쳐도 으스러질 정도였다.
한 식당을 지나니 다음 식당도, 그다음 식당도 산불이 모두 휩쓸고 갔다. 4륜 전동차를 미처 챙기지 못해 불에 타 살만 남겨둔 곳, 식당 앞 전창이 불이 타면서 길가로 쏟아져 마치 폭격을 맞은 곳처럼 처참한 곳도 있었다.

식당의 가재도구는 불에 타고 바람에 휩쓸려 인근 개천에도 마구 떨어져 있었다. 타다 남은 바가지, 소쿠리, 문짝 등 누가 내버렸다고 해야 믿길 정도였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연기가 올라온 곳도 있었고 열기가 남아 식당 주변이 후끈후끈했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던 예전 달기약수터 식당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이 먹먹해질 순간 경남식당 윤진동(74) 전 청송 달기약수번영회장을 만났다.
윤 전 회장은 "뭐부터 말해야 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산불이 날 당시를 윤 전 회장이 말해줬다.

지난 25일 오후 4시 30분쯤 인근 안동에서 청송에 불이 옮겨붙을 수 있다며 대피하라는 전화를 받고 윤 전 회장은 식솔들과 일하는 직원들을 챙겨 청송군민체육센터로 우선 몸을 피했다. 오후 8시쯤 식당이 걱정돼 윤 전 회장과 몇몇 식당 주인들은 차를 끌고 약수터 입구까지 왔다. 약수터를 끼고 양옆에 산에 불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고 약수터 위 길가에는 나무가 여러 그루가 쓰러져 모든 길이 막혀있었다.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30여 식당 전체에서 연기가 올라왔고 불꽃이 마구 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이 붙은 식당 앞 도로와 개울을 건너 반대편 도로에 서 있었던 윤 전 회장의 일행이 정면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화기가 강했다고 한다.
윤 전 회장은 "평생 일궈낸 식당이 눈앞에서 타는 데 가슴이 무너지고 앞이 막막했다"고 말했다.
"저 집은 불이 안 붙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개울로 내려가 바가지에 물을 받아 손을 가리킨 곳을 달려갔다. 정말 불이 붙지 않고 외관만 그을었을 뿐이었다. 이 일행은 자신들의 모든 재산이 타들어 갔지만 이웃의 집이라도 지키고자 이때부터 새벽 4시까지 개울을 퍼다가 집과 식당 등에 퍼부었고 불이 잦아들면서 총 4곳의 건물을 살리게 된 것이다.
윤 전 회장은 "불이 지나가고 나서 따끔하길래 손을 보니 시뻘겋게 다 까졌고 머리도 여러 군데 탔더라"며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불을 다 끈 일행은 날이 밝을 때까지 자신들의 식당 앞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윤 전 회장은 "불은 잘 껐는데 당장 내 일이 생각나니 누구 하나 입을 땔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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