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북부 산불로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청송지역 이재민들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 대피 사흘째를 맞아 청송국민체육센터는 텐트 부족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며, 홀로 온 주민들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불편까지 겪고 있다.
제대로 씻지 못하거나 추위와 싸우며 차에서 밤을 보내는 이들도 있어, 대피소 환경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긴급한 텐트 추가 확보와 실질적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부족한 텐트에 모르는 사람과 지내야 해
27일 오후 3시쯤 찾은 청송국민체육센터. 센터 밖 주차장은 각종 구호물자를 내리는 차량과 급식차 등이 뒤섞여 혼잡했다. 내부는 이재민을 위한 임시 텐트로 가득 차 있었고, 대부분 주민은 텐트 안에 누워 있었지만,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등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상황판에 적힌 '주민 133명, 텐트 66개'는 이미 대피소가 포화 상태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주민들은 주로 파천면 병부리와 청송읍 부곡리 출신으로, 산불 피해가 집중돼 전소된 가옥이 많은 지역이다.
병부리에서 온 장점술(85) 씨는 사흘 전 밤 마을에서 가장 늦게 빠져나왔다고 했다. 불에 휩싸인 마을에선 '펑'하고 기왓장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고 했다. 장 씨는 "돌개바람과 함께 불이 몰아쳐 아래채 지붕이 날아갔고, 연기를 들이마셔 의식이 희미한 와중에 집에서 겨우 빠져나왔다"며 "청송의료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대피소로 왔지만 옷 한 벌도 챙기지 못했다. 여기가 집이 돼 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피소 생활의 불편함도 토로했다. 그는 "텐트 안에서도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쉽게 잠을 청할 수 없다. 혼자 온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텐트를 함께 써야 해서 더욱 불편하다"고 말했다.
청송군청 관계자는 "텐트를 추가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재민 수가 빠르게 늘어나 따라잡기가 어렵다"며 "불편하겠지만 홀로 오신 분들은 오늘부터 같은 성별의 다른 이재민과 텐트를 함께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로당으로 돌아간 주민들…돌봄 가족 챙기는 보호사
불편한 대피소 생활 때문에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으로 돌아가는 주민들도 있다. 파천면 신기리 주민 이재극 씨는 이웃 5명과 함께 집 앞 경로당으로 돌아왔지만, 전기가 끊겨 이틀 동안 냉장고도 사용하지 못하고 찬물로 씻어야 했다.
이 씨는 "불편한 점이 있지만, 대피소에서 지내는 것보단 훨씬 낫다. 대피소에선 낯설어서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에 있는 게 편하다"고 설명했다.
텐트가 부족해 이틀 동안 자신의 차에서 숙박한 이재민도 있었다.
이날 대피소에서 만난 정경희 요양보호사는 안동의 본인 집이 전소됐음에도 돌보던 85세 할머니와 그의 중증 지적장애 아들을 떠날 수 없었다. 정 씨는 주소지가 청송이 아닌 안동이어서 청송 대피소를 이용할 수 없었고, 결국 차에서 밤을 보냈다.
남편이 안동체육관으로 대피한 상황에서도 정 씨는 돌보던 할머니 가족 곁을 지키기로 했다. 두 차례 밤을 대피소 앞 주차장 차에서 보낸 정 씨는 이날 대피소에 나온 군청 직원에게 오랫동안 사연을 설명한 뒤에야 텐트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정 씨는 "내가 없으면 돌봄 대상인 할머니의 아들이 스스로 꼬집거나 때리기까지 해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남편도 안동 대피소에 있고 딸도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지만 돌보던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며 "오늘 밤부터는 그래도 곁에서 같이 잘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온정도 이어졌다. 봉사단체 '원불교봉공회' 회원 30여 명은 오는 30일까지 매일 식사 600인분을 제공할 예정이며, 한국외식업중앙회도 자장면 200인분을 지원하기로 했다.
원불교봉공회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산청에서 식사 봉사를 하다가 경북 지역 산불이 워낙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상황이 길어진다면 봉사 연장도 생각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산불이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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