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애, 배신과 갈등, 의리와 복수!" 홍콩 느와르의 붐을 일으킨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英雄本色 1987)을 본 것은 동네 영화관이었다. 성냥개비를 물고 트렌치코트를 날리며 쌍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홍콩느와르 스타일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그해 영웅본색으로 한국 사회 "따거"로 통한 주윤발(周潤發‧저우룬파) 의 "사랑해요 밀크스"는 전설적인 CF가 되었는데, 명장면은 인간적 고뇌와 감성을 보여준 장국영 (張國榮‧장궈룽)의 등장이었다. 비극은 2003년 4월1일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香港文華東方酒店)에서 장국영 투신으로 세계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다. 돌아오는 만우절은 기일(忌日) 22주기가 되는 해인데도 <천녀유혼>, <패왕별희>,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금지옥엽> 등으로 로맨스, 느와르, 판타지와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초월한 장국영은 홍콩 느와느 시대에 전설의 배우로 남아있다. 장국영과 영화 향수를 소환한 것은 최원종 연출의 <굿모닝 홍콩>(작, 이서원 연출, 최원종 ‧ 국립 정동극장 세실) 때문이다.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은 만우절을 앞두고 장국영을 추모하는 여행 중, 영화 속 명장면을 재현하려다가 예상치 못하게 홍콩 시위대 행진에 휩쓸려 '나이키 에어조던2'한 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운동화를 찾기 위해 헤매던 회원들과 시위대가 마주하게 되면서 한국 사회 민주화의 진통들이 스치고 홍콩의 현실을 경험하는 구조다. 우산 혁명과 송환법 반대로 점화된 시위는 처참한 느와르 현장이 되어버린 홍콩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며 '자유민주주의'와'민주화의 연대의 방식'을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살아나는 작품이다.
'영웅본색', '아비정전', '천녀유혼' 등 90년대 주윤발, 장국영, 적룡 등 홍콩 느와르 시대 영화적 감성을 소환하기 위한 명장면들은 영화 기법을 연극적으로 변주하며, 조명과 음향영상을 활용해 홍콩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재현시키며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과 배우들의 유기적인 앙상블도 영화 같은 현실을 보는 듯한 일루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극 중 분위기로 시민시위대와'장사모'회원들이 영화적 감성을 자극하는 재현의 층위들과 대비되면서도 <굿모닝 홍콩>이 향하는 것은 민주화와 자유를 위한 희망과 연대를 파고든다.

◆ 한국사회 6월항쟁 민주화의 오마주 '굿모닝 홍콩'
홍콩의 네온사인, 좁은 골목, 상징적인 영화 포스터, 스크린을 통한 홍콩 거리의 공간적 분위기가 재현된다. 시각을 자극하는 조명과 영상, 배우의상, 80, 90년대 홍콩 영화의 동작 연기, 총격전 등은 영화적 사운드로 극대화된 느아르풍이다. 추억의 감성 코드로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극의 배경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민주화 시위를 연상하게 하는 가드레일 바리게이트가 무대를 이동하며 영화장면 재현과 홍콩경찰서, 시위 현장과 홍콩 거리, 오리엔탈 호텔 등으로 극 중 장면들이 중첩되는 무대는'우산 혁명'과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로 화염병, 최루탄, 물대포로 격화된 홍콩의 2019년도는 한국 사회 6월 민주항쟁이 오마주 되면서 느와르가 되어버린 홍콩의 정치적 현실이다. 인물과 공간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기억'과 '상실'의 시간을 격렬한 시위 현장으로 환기해 내면서도 <굿모닝 홍콩>은 80, 90년대 느와르를 돌아 민주화를 향한 홍콩의 정치적인 현실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 작품의 매력이다.
<영웅본색2>에서 경찰 아걸로 분한 장국영이 총에 맞고 핏물 흘리며 숨통이 조여오는데도 공중전화 부스에서 아내 재키와 통화하면서 딸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 주윤발의 성냥개비 장면들이 연상되는 설정,'천녀유혼'의 몽환성,'아비정전'에서 쓸쓸한 장국영의 감성 등이 곳곳에서 재현된다. 이러한 영화적 장치들이 연극적 장치와 결합하여 <굿모닝 홍콩>은 느와르적 재현의 변주를 통해 뜨거웠던 한국 사회의 그날을 환기하게 되고, 상실과 기억, 연대와 민주화, 정치로 분열된 자유민주주의의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우산 혁명으로 상징되는 색색의 우산과 나이키 운동화, 장국영의 죽음은 영화 속 극중인물의 이미지(정의, 연민, 인간애, 연대, 우정과 사랑, 희망)로 층위를 이룬다. 시위대 속으로 사라진 운동화 한 짝이 시민시위대의 핏물로 짓눌려 '장사모' 회원들 품으로 돌아오는 것도 장국영은 살아있는 존재로 연대 되는 것이다.

◆ 80, 90년대 느와르가 된 홍콩 거리와 나이키에어조던
<굿모닝 홍콩>은 시위대 우산과 나이키 신발 리뷰를 하는 40만 채널 운영유튜버 기찬(김수민)과 연결되면서 극은 흥미로워진다. 장국영의 애장품인 나이키 에어조던2는 현재시간으로 연결되는 상징성을 부여한다. 경매로 나온 에디션을 리뷰 영상을 촬영하면서 홍콩 시민들과 우연히 연대하게 되는 구도를 보여주고 신발 한 짝이 시위대로 빨려 들어가면서 장국영의 추모식,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영화 재현과 홍콩독립과 악법철회, 자유 쟁취를 외치는 시위대라는 다층적 구도(장국영 추모, 영화재현, 홍콩시민시위대)의 부조화를 통해 발화되는 것도 공감과 희망의 연대를 은유한다. 80, 90년대 장국영을 사랑하고 여전히 그를 추모하는 것 처럼 말이다. 시위대 앨리스( 권나현 분)가 말한 "(중략)우린 한국이 어떻게 민주화를 쟁취했는지 알고 있어요. 우린 광주 항쟁도 알고 6월 항쟁도 알아요. 한국은 우리한테 많은 영감을 줬어요"라는 말처럼 한국의 '장사모'와 홍콩의 시민시위대가 한 국가의 시민처럼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역사도, 영화도, 민주화의 진통도 닮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공감과 연대를 은유하는 장면들은 <천녀유혼> 장면에서 원태( 공재민 분)가 흑산 대왕을 연기하는 장면이다. 흑산을 물리치기 위한 불경 소리와 시위대의 광복홍콩, 시대 혁명의 구호가 연대의 소리로 발화되는 설정은 작가적 은유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경찰서 장면에서 "홍콩이 중국 일부인 것을 인정하냐"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물음에 '장사모'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연대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이다. 민주화와 자유를 원하는 시민 함성이 들려와도 일국일제(一國一制)가 되어가는 현실로 조롱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홍콩 시위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려도, 조슈아 웡이 그의 민주화 롤모델인 한국의 연대를 희망한다 해도 현실은 국내 시민단체, 정치권, 학생들의 소리에도 모호한 태도를 보인 당시 한국 정부를 풍자하면서도 중국과의 '쎄쎄' 외교적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재민, 최영도, 김수아, 김수민 배우들의 연기와 웃음 코드 앙상블이 <굿모닝 홍콩>을 살려내고 있고 감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김동현의 연기는 진지하면서도 코미디 수준을 보여준다. 한 관객은 공연을 본뒤 소셜 미디어에 "진짜 강추입니다. 울다 웃다 나왔어요."라며 후기를 남겼다. 시위대와 홍콩 경찰역으로 분한 명작옥수수밭 청년단원들은 직접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구사하며 생생한 그날의 현장으로 재현된다. 무대를 대하는 극단 명작옥수수밭 청년 단원들의 열기가 뜨겁다. <타자기 치는 남자>, <메이드인 세운상사>, <패션의 신>, <깐느로 가는 길>,<세기의 사나이>로 근현대사 시리즈 차근호 작가의 희곡 전집을 연출하며 콤비를 보여온 최원종 연출은 <굿모닝 홍콩>이 국립 정동극장 기획공연임에도 초연 작품처럼 연출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작품처럼 '세기의 사나이'이다. <굿모닝 홍콩>은 장국영 감성을 소환해 80, 90년대 홍콩느와르 영화적 감성을 코미디 수준으로 패러디시키면서도 홍콩 시민시위대들의 자유와 민주사회를 위한 투쟁과 희망, 절망을 전경화하는 작품이다. 늦깎이 따거들의 '울다 웃는' 고군분투 느와르 홍콩여행기는 4월6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되고 있다.

|미니 인터뷰 (굿모닝 홍콩 연출, 최원종)
─ < 굿모닝 홍콩>이 초연 무대와 달라진 것은.
"올해로 장국영 배우가 죽은지 20년이 되었어요. 돌아오는 4월1일 만우절은 그의 기일이다. 장국영 배우가 만우절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그런지 죽음은 매번 만우절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굿모닝 홍콩>의'장사모'(장국영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멤버들은 장국영이 죽은지 16년이 지나도록 그를 그리워하고 매년 홍콩에서 그를 추억하는 오마주영상을 찍는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왜 여전히 장국영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이런 부분들 스토리가 보강된 것이 초연과 달라진 지점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밀한 인물들의 스토리가 관객과 가깝게 만날 수 있게 했다."
─ 장국영의 소환이 80,90년대 향수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 같다.
"1980년, 90년대 한국은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었고 홍콩 영화는 우리에게 없었던 표현의 자유로움이 있었다. 충격적일 만큼 부러웠다. 지금은 무한한 표현의 자유가 있었던 홍콩의 문화는 쇠퇴하였고, 한국문화는 K-컬처라는 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세계화 되었다.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는 1980년 90년대 홍콩 이상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 작품을 만들 때는 홍콩과 한국의 뒤바뀐 정치, 문화적 상황에서, 홍콩 영화가 황금기였던 그때의 우리가 받았던 그 자유로움을 떠올렸다. 그때는 홍콩인들과 연대의식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도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이 향수로만 머무르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 나이키운동화에 대한 설정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홍콩인들이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홍콩시위를 어떻게 하면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과 짧은 시간의 연극 안에 담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온전하게 담으려면 관객의 상상력과 마음을 울리는 카타르시스로 확장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나이키 신발이 시위대를 거치면서 점점 피가 묻어가는 방식이었다. 점점 피가 묻어가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려고 했고, 홍콩인들의 자유에 대한 투쟁을 절박하게 확장시켜 나가려 했다."

─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 민주항쟁이 박히던데.
"등장하는 인물들은 40대 중반이다. 그들 역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책으로만 경험한 세대이며, 한 발 정도 걸치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들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홍콩을 보면서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네 차례 공연하면서, <굿모닝 홍콩>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지금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도 역시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 연극에서 보여지는 홍콩 시위의 절박한 모습이 한국에서도 진행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안타까움이 관객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 코미디 요소도 많으면서도 민주화의 시민의식들이 강조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유머를 잃으면 힘든 순간을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흑한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려면, 지치지 않아야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삶의 유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유머들이 담겨있다. 무거운 이야기도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마음속에 오래 남을 수 있게 작품을 관객분께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출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연출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없다. <굿모닝 홍콩>은 2024년 국립정동극장_세실 창작ING에 선정되서 공연된 작품이다. 2025년에도 국립정동극장_세실 기획공연으로 선정되어 안정적으로 디벨롭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기획공연인 만큼 제작과정에서부터 홍보까지 국립정동극장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 시위대로 나오는 배우들은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배워야 했다. 배우 중에 한 명이 만다린어를 하는 사람이 있어 배울 수 있었고, 홍콩의 지인을 통해 광둥어 역시 꼼꼼하게 배울 수 있었다. 광둥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홍콩의 민감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 그 부분의 걱정이 가장 컸다."

─ 배우들이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직접공부 했다고요?
"배우 중에 중국 통번역사가 있었고, 그 배우의 홍콩 지인들을 통해 광둥어 도움을 받았다. 연습실 현장에서, 또 공연장에서 매번 언어가 잘 구사되고 있는지 체크했고, 공연을 보러온 홍콩인들과 인연을 맺고, 언어를 체크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홍콩배우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의 도움으로 광둥어 지도를 받았다."
─ 중점을 두고 싶었던 점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코미디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었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무게를, 무겁지 않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연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웃으면서 작품을 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 부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
─ 배우들 앙상블이 좋던데..
"시위대로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극단의 단원들이다. 함께 하는 선배 배우님들도 모두 극단과 오랜 인연을 맺고 함께 작업을 해오는 분들이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공연스타일과 연출 스타일, 작품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모두들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작품에 임해주신다. 그런 애정이 배우들의 앙상블로 나오는 것 같다."
─ <세기의 사나이> 재공연 준비한다고요.
"올해가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20주년이다. 2018년부터 시작한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 중에 극단의 가장 대표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세기의 사나이> 작품을 광복80주년 기념으로 6월 달에 올릴 예정이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9년에 초연을 했는데, 같은 극장에서 6년 만에 다시 올리게 되었다. 지방 투어도 잡혀있다."
─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앞으로 계획은.
"국립정동극장과 함께 <굿모닝 홍콩> 지역 투어를 간다.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광명문화재단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이 되어 신작 2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시원 작가가 직접 쓰고 연출하는 <겨울산책> 그리고 차근호 작가의 작품을 제가 연출하는 <공공의 영역>이 올해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준비하는 신작 작품들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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