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동부를 덮친 '괴물 산불'이 역대 최악의 재난으로 치닫고 있다. 불길이 지나간 마을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무너졌다. 6·25전쟁 때보다 더 참혹한 광경에 망연자실한 주민들은 평생을 산 터전을 잃고 대피소로 내몰렸다.
급하게 몸을 피하려다 불구덩이에 생목숨을 잃거나 가족들을 잃고 일상마저 무너진 이재민들이 잿더미 위를 서성이고 있다.
27일 염원했던 비 소식마저 기대에 못 미치면서 괴물 산불은 장기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당분간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강한 북서풍도 불 것으로 예측되는 등 현장에는 비관적인 공기가 감돌고 있다.
이날 경상북도에 따르면 경북 북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산불로 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에서 주택 등 건축물 2천572채가 잿더미가 됐다.
영덕의 한 이재민은 "화마가 휩쓸고 간 마을 상황이 70여 년 전 6·25전쟁 당시 피해보다 더 참혹하다"며 "대대로 살았던 정든 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대피 인원만 3만3천89명으로 아직 1만5천369명이 대피소에 머무는 형편이다. 광범위한 확산 범위에 진화 인력과 장비가 분산되고, 강풍과 연무 등 각종 변수까지 겹치면서 진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5개 시·군의 산불영향구역은 3만5천697㏊로, 진화율은 63%를 기록했다. 의성과 안동이 각각 62%, 63%를 보였고, 청송 80%, 영양 60%, 영덕 50% 등이었다.
건축물 소실 등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까지 안동에서만 주택 952채가 전소됐고, 영덕에서는 주택 862채가 모두 불에 탔다. 의성에서는 주택과 공장, 창고 등 222채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청송과 영양에서도 각각 490채, 73채의 건축물이 모두 불에 소실됐다.
인명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이후 5개 시·군에서는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덕이 9명으로 가장 많고, 영양 6명, 안동 4명, 청송 3명 등이다.
진화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도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 27일 오전 11시 50분쯤 영덕군 매정리 한 차량 안에서 산불감시원 A(69) 씨가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 25일까지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된 뒤 귀가 도중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6일 낮 12시 54분쯤에는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에서 진화 헬기가 추락해 박현우 기장이 순직했다.
당분간 비 소식이 없고, 진화 속도는 각종 변수가 겹치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진화 인력의 피로 누적은 극심한 상황이다. 산불 발생 6일 동안 연인원 2만2천300명의 인력이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의성에서 활동하는 한 소방관은 "매일 차량 안에서 쪽잠을 자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책임감을 갖고 현장으로 나가고 있지만 하루만이라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고 털어놨다.
경북도는 주택 소실 등의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호텔·리조트 등 숙박시설에 수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산불 피해가 심각한 경북 안동시·청송군·영양군·영덕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피해자 지원을 비롯한 범부처 차원의 조치가 이뤄진다.
댓글 많은 뉴스
민주 초선들 "30일까지 마은혁 미임명시, 한덕수 포함 국무위원 모두 탄핵" [성명서 전문]
민주당 권리당원의 외침 "전국이 불타는데 춤 출 때냐"
전한길, '尹파면' 촉구 한강 작가에게 쓴소리 "비수 꽂는일, 침묵했어야…"
이재명 현충원에서 또 "예의가 없어" 발언... 왜?
박찬대 "한덕수, 4월 1일까지 마은혁 임명 안 하면 중대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