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기다림에 지친 주민들 "다들 힘드니까 아파도 그냥 참아요"

감기·몸살, 상비약으로 버텨…연기 흡입에 인후통·흉통 호소
160개 대피소, 1만5천명 남아 좁은 대피소탓 텐트 설치 불가
의성군서 돼지 3,200마리 폐사…시·군 곳곳에 단전·단수 속출
고속도로·국도, 통제·해제 반복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영양군민회관에 마련된 산불 피해 관련 대피소를 방문한 가운데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영양군민회관에 마련된 산불 피해 관련 대피소를 방문한 가운데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괴물 산불의 기세가 좀처럼 숙지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고통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돌아갈 곳을 잃은 이재민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남은 주민들도 언제 대피할 지 모르는 생활 속에 반복되는 불편을 감내하며 버텨가는 상황이다.

산불의 위세가 계속되자 주택이나 경작지, 가축 등의 피해도 점차 누적되는 상황이다. 거듭되는 단전, 단수 등, 교통 통제 등의 불편도 더해져 일상 생활도 여의치 않다.

◆"그저 하루하루 버틸 뿐…희망이 안보여"

"대피소에서 잘 챙겨줘도 집 보다 먹고 자는 게 편할 수 있겠냐"

27일 오전 의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문재훈(73) 씨는 엿새째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 곳 대피소에서 가장 오래 지낸 주민이다.

지난 22일 의성산불이 발생한 첫날, 의성읍 중리3리를 덮친 화마로 집을 잃었다. 같은 동네 주민들은 산불 상황을 보며 집을 오가지만 그는 집을 잃어 갈 곳이 없다.

문 씨는 "대피 당시 입고 나온 옷 한 벌이 전부"라며 "앞으로 살 길이 걱정돼 잠도 안 오고 답답해서 매일 대피소 문 앞에서 먼 산만 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6일째 경북 동북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에 집을 떠난 주민들의 대피소 생활도 길어진다. 기약없는 생활은 그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27일 경북도에 따르면 27일 오후 6시 기준 각 시·군에 마련된 160여 개의 대피소에는 3만3천89명이 불길을 피해 대피했다. 이 중 1만7천720명은 귀가했으나 1만5천369명은 아직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다.

각 시·군에서 최대한 구호물자 등을 확보하고 있지만 대피소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좁은 대피소는 구호용 텐트도 설치할 수 없어, 개인용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마저도 설치를 못하는 경우는 차가운 바닥에 겨우 매트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안동에 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김재욱(66) 씨는 "대피소에서 먹는 것, 입는 것은 지급을 받았지만, 여기 대피소는 텐트가 없어 다 노출된 채로 생활한다"며 "서로 배려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생리적 현상 같은 것 때문에 민망할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의료지원도 절실하다. 고령층의 비중이 높은 농촌 마을 특성 상 대피소에는 건강에 취약한 고령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 흡입에 따른 인후통이나 흉통 등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불편한 생활로 감기, 몸살 등에 걸린 노인들도 상비약으로 버티고 있다.

의성고등학교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최모(85) 할머니는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가정용 상비약을 줬다"면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데려다 줄 마을 청년도 없고, 다들 바쁘니 부탁하기도 멋쩍고 해서 그냥 참는다"고 했다.

27일 안동 서부초등학교 산불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7일 안동 서부초등학교 산불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계속되는 산불에 누적되는 피해

산불영향구역이 넓은 의성군은 주택과 창고 뿐만 아니라 사찰과 경로당,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등이 불에 타는 피해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가축 피해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27일 기준 한우 13마리와 돼지 3천200마리가 폐사했고, 양봉 246군도 화재 피해를 입었다.

산불이 확산되면서 전통사찰인 대곡사와 수정사, 기정사 등에 있던 문화재도 안전한 장소로 이송됐다.

전력 설비도 잇따라 피해를 입으면서 곳곳에서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전력 경북본부에 따르면 의성군에서는 전선 119건, 인입선 206건, 계기 129건 등 저압설비 452건에 피해가 발생했다. 고압설비 22건도 피해를 입어 임시 조치를 통해 전력 공급을 정상화한 상태다.

산림 당국은 주요 시설물인 의성변전소와 안계변전소 방어에 집중하는 한편, 송전선로와 송전탑에 대한 화재 대비 인력도 투입한 상태다.

안동에서도 산불 피해에 단수까지 이어져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산불로 가압장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일직면과 남선면, 길안면, 임하면, 남후면, 임동면, 풍천면 일부 지역에는 수돗물 공급이 제한됐다. 또한 이 일대 2천487가구에 전기 공급이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도 했다.

지난 25일 강풍을 타고 산불이 확산됐던 영덕군 지품면 지역에서도 단전과 단수가 속출했다. 지품정수장이 화재 피해를 입었고, 영덕정수장의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달산면과 지품면 일부 지역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또 변전소 정지로 25일 오후 9시 6분께 관내 전 지역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가 대부분 복구됐으나 지품면 등 산불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는 아직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도 있다.

영덕은 25일 밤 10시부터 통신이 두절됐다가 다음 날 새벽에 대부분 다시 개통됐으며 피해가 심한 지품면 일부에서는 다시 휴대전화에 장애가 발생했다가 정상화되기도 했다.

영양군 입암면, 청기면, 석보면 지역도 한때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불편을 겪었다.

고속도로와 국도 등은 통제와 해제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서산영덕고속도로 동상주 나들목(IC)∼영덕 IC 구간 양방향과 중앙고속도로 의성 IC∼풍기 IC 구간은 사흘째 양방향 통행이 통제되고 있다.

또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마령교 삼거리에서 영양 입암면 산해리 산해 교차로를 연결 구간도 통제 중이다.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길안면 배방리 지방도 구간도 차량 운행이 막혀 있다. 이 밖에 국도와 지방도, 군도 8개 구간과 일부 철도 노선은 통제됐다가 통행이 재개됐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