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동부권을 삼켰던 '괴물 산불'이 7일 만에 가까스로 진압됐다.
28일 산림청이 의성을 비롯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을 덮인 경북 북동부 산불의 주불 진화를 선언했다. 기세등등한 화마를 피해 몸을 피했던 주민들도 잃었던 미소를 되찾고 각자의 삶터로 돌아갔다.
그러나 거친 불길에 돌아갈 곳을 잃은 주민들은 반가운 소식에도 대피소를 떠나지 못했다. 그들은 텅 비어가는 대피소를 지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좌절하고 있었다.
◆간신히 되찾은 미소…"그단새 정들었네"
28일 오전 의성군 의성고등학교 체육관. 의성군의 산불 진화율이 95%를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피소 곳곳은 짐을 싸는 주민들로 분주했다.
작은 배낭은 옷가지로 터질 듯 부풀었고, 물통 등 작은 짐들은 비닐봉투와 종이가방 등에 차곡차곡 집어 넣었다.
주민들은 함께 돌아갈 일행을 정한 뒤 귀가 인원을 직원에게 알려주고 대기 의자에 앉아 차량을 가져올 자녀나 지인을 기다렸다.
전날까지 80명이 머물렀던 이곳에는 이날 오전에만 40명이 집으로 떠났다.
옥산면에 사는 김경란(88) 씨가 의료 지원을 나온 직원에게 "그동안 고마웠어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김 씨가 이 곳에서 지낸 지는 이날로 닷새째다.
김 씨는 "대피소로 처음 오던 날 산에서 불길이 치솟고 헬기 6대가 날아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불이 다 꺼지고 집에 간다니 참 기쁜데, 며칠 새 정이 들었는지 아쉽다"고 웃었다.
한창 웃음꽃을 피우던 주민들이 차량이 도착하자 트렁크에 짐을 차곡차곡 실은 뒤 차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우리 먼저 갑니다. 나중에 봐요."
다른 주민들은 대피소 관리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생하셨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옥산면 주민 홍정숙(80) 씨는 "대피소로 온 후에 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큰 피해는 없더라"며 "바람이 불어서 불이 다시 날까봐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간다니 좋다"고 했다.
의성고등학교에서 사흘째 급식 봉사를 한 성민원 군포제일교회 관계자는 "주민들이 건강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돌아갈 삶터엔 잿더미만…"마음 무거워요"
이날 오후 의성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점 대피소인 의성읍 의성실내체육관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비 소식과 함께 대부분 지역에서 불이 꺼졌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대피소에 있던 주민들은 대부분 오전 일찍 짐을 쌌다.
정오를 지나 진화율이 98%를 넘어서자 대피소를 떠나는 주민들은 더욱 늘었다. 산불의 기세가 최고조였던 지난 26일 333명까지 모였던 이 곳에는 이날 60여명이 남았다.
이날 오후에야 불이 꺼진 신평면 주민들과 아예 집이 소실된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의성군은 대피소에 남아있는 주민들이 줄어든 점을 고려해 의성실내체육관과 의성유니텍고등학교 등 2곳만 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피소는 교통이 편리하고 구호텐트와 급식, 침구 등 재해구호물자가 가장 잘 갖춰져 있다. 의료 및 심리 회복 지원 등도 원활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하루 정도 더 머문 뒤 떠날 예정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아직 대피소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집이 완전히 불에 타 돌아갈 곳이 없거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이들이다.
사흘 전, 단촌면에서 급하게 몸을 피한 김모(77) 씨 역시 대피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산불이 괴물처럼 동네를 집어 삼키던 지난 26일, 김 씨는 살던 집을 화마에 잃었다.
"불길이 보이긴 했는데 소방차도 보였고, 길가에 집이 있어서 걱정을 안했어요. 몸만 빠져 나왔는데 모두 타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죠."
김 씨는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무거운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나이도 많은데 자식에게 기댈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산불이 다시 살아날 것을 걱정하는 주민들도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김봉순(70) 씨도 "일시 대피소에서 하루 더 버텨볼 요량"이라고 했다. 김 씨는 이번 산불이 창고와 외양간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김 씨는 "집이 마을 안에서도 좀 떨어져 있다. 또 산과 가까워 주변에 낙엽이나 마른 가지 등 불이 옮겨 붙기 쉬운 환경"이라며 "바람이 불면 다시 불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완전히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고 했다.
댓글 많은 뉴스
민주 초선들 "30일까지 마은혁 미임명시, 한덕수 포함 국무위원 모두 탄핵" [성명서 전문]
민주당 권리당원의 외침 "전국이 불타는데 춤 출 때냐"
이재명 현충원서 또 "예의가 없어" 발언…왜?
전한길, '尹파면' 촉구 한강 작가에게 쓴소리 "비수 꽂는일, 침묵했어야…"
박찬대 "한덕수, 4월 1일까지 마은혁 임명 안 하면 중대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