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찾아와 '우리 집에 가자'하는데 안 가신 어르신도 있어요. 여기가 훨씬 더 좋대요".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 강모(56)씨는 이 임시대피소의 1호 입소자이자, 대피소의 '개국공신'이다. 강씨는 20여명의 마을 사람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쁘게 돌아다녔다.
지난 25일 오후, 산불은 임하면에 있던 마을 3곳을 집어삼켰다. 강씨의 집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급작스러운 화재에 소지품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입은 옷 그대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지은 지 10여 년이 겨우 넘어 애지중지하던 집은 뼈대만 남겨 두고 까맣게 불타버렸다.
이후 200여 명이 모여 있는 안동초등학교에 잠시 지냈지만, 복잡한 데다가 집이 걱정돼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강씨는 집과 가까운 임하면 복지회관을 임시대피소로 직접 꾸리기 시작했다.
불길이 복지회관 코앞까지 닥친 탓에, 복지회관은 사람이 머무르기 어려워 보였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재와 냄새가 복지회관을 꽉 채웠고, 복지회관에서 사용하던 드럼과 장구,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강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복지회관 체력단련실의 바닥과 창문을 닦고,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은박지 돗자리를 깔았다.
정식 대피소가 아니다 보니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임하면에 몸을 피할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오는데, 변변찮은 이불이나 먹을거리도 없는 상황이었다. 강씨는 들어오는 사람의 인적 사항을 일일이 기록해, 인당 1개씩 긴급 구호 상자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마을 사람들이 머무르며 생기는 쓰레기를 치우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식사를 챙기는 것도 강씨의 일이었다.
강씨는 "구호 상자를 요구하더라도 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한 이불을 여러 사람이 나눠 덮어야 한다. 정작 필요한 건 없는데 물과 커피믹스, 초코파이만 잔뜩 들어와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그래도 친한 마을 사람들끼리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슬픔이 조금 가시는 듯해 임시 대피소를 꾸리기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씨를 따라 함께 움직이는 입소자도 점점 늘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5시가 되자, 강씨는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강씨가 "내가 젊고, 예쁘다 하면 일어나서 도와달라"며 농담을 던지자, 5명이 여성이 웃으며 일어나 앞치마를 입었다.
강씨도 함께 지내는 데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웃이니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어르신들은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다. 비교적 젊은 주민들이 어르신들이 사는 방식에 맞춰주고 있다"며 "다들 집을 잃고 예민한 상태인데도, 우리 임시대피소에는 우는 사람이 없다. 입소자들끼리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고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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