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난민처럼 짐 싸고 풀어"…안동 장애인시설, 산불 피해 4일 간 3번 이사

경북 안동시 길안면 소재 '평강의집'
입소자‧직원 "대피 생활 계기로 더욱 단합"

28일 평강의집 입소자들이 산불 대피소 반다비체육시설에서 식사하는 모습. 평강의집 제공
28일 평강의집 입소자들이 산불 대피소 반다비체육시설에서 식사하는 모습. 평강의집 제공

경북 안동의 지적 장애인 거주 시설 '평강의집' 직원과 입소자들에게 산불 대피는 말 그대로 피난 생활이었다. 불이 어디로 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설 입소자들과 직원들은 나흘 동안 세 번이나 거취를 옮겨야 했다. 촌각을 다투는 대피 과정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향한 헌신과 신뢰를 확인했다.

◆4일 간 3번 바뀐 대피소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평강의집은 안동시, 경북소방서, 여러 읍‧면‧동으로부터 "산불이 평강의집으로 번질 것 같으니 얼른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평강의집 비상연락망을 통해 모든 종사자들에게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졌고 직원들은 입소자들을 옮기기 위해 차량을 총동원했다.

입소자 28명과 종사자 11명은 병원 진료에 필요한 카드와 도장 정도만 챙겨 승용차 8대에 나눠 타고 시설을 빠져나왔다. 입소자들은 지적‧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어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고 화재로 인한 연기 등에는 더욱 취약했다.

첫번째 대피 장소는 경북소방학교 기숙사였다. 대피소에서의 첫날밤, 평강의집 식구들은 경로를 예측할 수 없는 불길과 바람의 방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

◆"언제든 짐 싸고 떠날 채비하는 피난민 생활"

첫 번째 대피소에서의 생활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25일 밤이 되자 경북소방학교 건너편 산 정상에는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평강의집 한 직원은 "입소자들 모두 무서움에 떨고 있었고, 일부 직원은 울기도 했다. 눈앞에 불길이 닥쳐오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다"며 "화마를 보고 있는데 어디로 다시 대피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입소자들은 자력으로 대피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평강의집 식구들은 이날 밤 두 번째 대피소인 와룡초등학교 강당으로 거취를 옮겼다. 완공된 강당이 아니어서 보일러 가동이 안 됐고, 임시 텐트 속에서 난방기구와 보온용품으로 추위를 견뎠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잠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길 때문에 시설 관리자들은 안동시와 시시각각 소통하면서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다음 대피 시설을 찾아내야 했다.

다음날인 26일 오후 3시. 평강의집 식구들은 세 번째 대피소 안동반다비체육센터로 다시 거취를 옮겨 마침내 안착했다. 한 직원은 "피난민처럼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고, 언제 다시 떠나야할 지 모르는 불안함 때문인지 이상 증세를 보이는 입소자도 있었다"고 했다.

◆전직원 한마음 한뜻으로…주의 온정 손길도 보탬

피난민과 같은 생활 속에서도 전 직원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입소자들을 돌봤다. 3교대 근무이지만, 직원들은 자진해서 연속 근무를 자처하면서 비상 상황에 차분히 대응했다.

안동시는 평강의집 입소자들이 불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제때 임시 거처를 마련했고, 대형 버스도 지원했다. 여러 단체에서 구호 물품도 끊이지 않았다. 평강의집 여자생활관 교사 김해정(49) 씨는 "그때 그때 필요한 물품이 들어왔고, 특히 장애인 건강관리에 중요한 식단도 잘 챙겨줬다"며 "시설 입소자들은 영양 상태가 안정과 직결된다. 밥과 국, 반찬 서너가지로 구성된 잘 차려진 배식 통이 끼니마다 지원됐다"고 말했다.

직원 일부는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퇴근하지 않고 평강의집 상태를 살피러 갔다. 직원들이 한 뜻으로 기도한 덕분인지, 건물 내부는 화재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김씨는 "전 직원이 역할, 지위를 막론하고 초인적인 힘이 생겼던 것 같다. 이송 과정에는 직원과 입소자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며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합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강의집 직원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입소자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호진(31) 평강의집 행정지원팀 과장은 "입소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전 직원이 힘을 합쳐 대응했다.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25일 밤 경북소방학교 건너편 산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 평강의집 제공
25일 밤 경북소방학교 건너편 산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 평강의집 제공
평강의집 입소자들의 두번째 대피소인 와룡초등학교 실내 강당. 평강의집 제공
평강의집 입소자들의 두번째 대피소인 와룡초등학교 실내 강당. 평강의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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