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참담한 현장 속에서 꽃피는 봉사 정신…경북 찾아온 '사랑의 짜장차'

10년간 재난 현장 가리지 않고 찾아… 후원금 바탕으로 운영
순식간에 그릇 비운 안동 임하면 주민들
"아무리 봉사해도 부족… 참담한 현장 안타까워"

주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자 짜장차가 분주해졌다. 임하면 주민들도 함께 힘을 모아 짜장면을 담았다. 정두나 기자.
주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자 짜장차가 분주해졌다. 임하면 주민들도 함께 힘을 모아 짜장면을 담았다. 정두나 기자.

참담한 경북 북부지역 산불 현장에 자발적으로 재난 현장을 찾아 봉사에 나선 이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마을 절반이 불타 매캐한 냄새가 자욱한 임하면 복지센터 앞. 28일 오후 4시쯤 복지회관 앞에 사랑의 짜장차가 섰다.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짜장 얼룩이 튄 앞치마를 입고 있는 다섯 명의 봉사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능숙한 손길로 양파와 큰 냄비를 나르는 이들은 무려 10년째 봉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오후 5시부터 문을 열기로 했지만, 배가 고프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은 봉사자들은 일찍 짜장면을 준비했다. 이들은 김이 폴폴 나는 짜장면과 김치, 단무지를 담아 어르신에게 건넸다. 혹여나 식사를 거르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큰 목소리로 식사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사랑의 짜장차를 이끄는 한국SNS연합회는 당초 봉사를 위해 모인 이들은 아니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이들끼리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단순한 친목 도모로 끝나는 모임이 아쉽다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나오자, 후원금을 모아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10년간 재난이 발생한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두 다녔다.

왜 일반 밥차가 아니라 짜장차일까. 오종현(50) 사랑의 짜장차·한국SNS연합회 전국대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특히 재난 현장에 있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짜장면을 만들게 됐다"며 "전국에서 활동하는 짜장차가 4대나 있는데, 우리가 원조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오 대표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경북 산불 현장을 찾아왔다고 했다. 오 대표는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면 신나는 노래도 틀고 짜장면을 드시는 분들도 흥겨워하니, 봉사자들도 힘을 얻곤 한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는 봉사자들도 아픔을 공감하게 된다"며 "보급되는 도시락만 먹느라 입맛이 떨어졌을 어르신들이 짜장면을 먹고 힘을 내길 바랄 뿐이다"고 했다.

이들이 보급한 짜장면을 먹는 임하면 주민들의 얼굴에는 꽃이 폈다. 쉬지 않고 불을 감시하던 의용소방대원들도 함께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는데, 살이 많이 찔까 걱정된다"며 젓가락을 들기 시작한 어르신들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하지 못한 남편이 걱정된 한 할머니는 짜장면을 싸 달라며 부탁하기도 했다.

음식을 먹고 있는 주민들을 보던 봉사자 정기열(53) 씨는 "현장을 보고 참담하고 안타까웠는데 어르신들이 맛있게 먹어주시니 마음이 놓인다"며 "아무리 진심을 다해 봉사해도, 이들의 아픔을 다 치유하지 못하니 부족하고 죄송한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임하면 주민들이 갓 나온 짜장면을 먹고 있는 모습. 정두나 기자.
임하면 주민들이 갓 나온 짜장면을 먹고 있는 모습. 정두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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