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 따라 귀농한 늦둥이 아들, 휴학하고 알바" 가슴 아픈 이재민 사연 눈길

경북 청송군에 지난해 귀농해 살다 산불에 집과 과수원 전체가 불탄 류영우(60)씨 모습. 남정운 기자
경북 청송군에 지난해 귀농해 살다 산불에 집과 과수원 전체가 불탄 류영우(60)씨 모습. 남정운 기자

경북 북부 지역 산불로 이재민이 속출한 가운데 청송군 주민 류영우(60) 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8일 오후 찾은 청송군 진보문화체육센터. 대피소 텐트 88곳에 들어간 188명의 이재민들은 모두 제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었다. 대피소는 화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가족들과 교회 동료들로 북적였다. 심리상담사들도 조심스레 텐트 지퍼를 내리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류씨도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1965년 안동에서 태어난 류씨는 20살이 되던 해 경기 부천시로 이사해 그곳에서 39년을 살았다. 이중 마지막 7년은 귀농을 준비하며 본가와 청송을 오갔고 지난해 과수원 앞에 집을 짓고 가족들을 불러들였다.

남부럽지 않았던 류씨 가족의 삶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잿더미가 됐다. 집은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고, 과수원에 심은 사과나무 수천 그루도 대부분 새까맣게 타버렸다.

류씨는 "평생을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착실히 살았다. 그 대가가 어떻게 이렇게 돌아올 수 있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대학에 진행한 류 씨의 아들 사연도 주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앞서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마지막 남은 류 씨의 아들은 지난해 아버지 근처에 살고 싶다며 당시 안동대(현 국립경국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류 씨의 아들은 화재 당시 학교에 있다가 아버지에게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오랜 시간 준비한 사과 농사를 망쳐버렸으니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류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들을 차마 막지 못했다며 눈물을 지었다.

류 씨는 "지난밤 아들이 '등록금이라도 안내면 좀 더 낫지 않겠냐'고 하더라.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며 "차마 아들을 선뜻 말릴 수도 없어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류 씨의 세 살 된 개
류 씨의 세 살 된 개 '시루'. 이재민만 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어 시루는 종이상자를 집 삼아 대피소 앞 주차장 류 씨의 트럭 위에서 지내고 있다. 남정운 기자

이날 대피소 앞 주차장에서는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화재현장에서 이재민들이 데리고 나온 개 몇 마리가 트럭 적재함 위에 묶여 있어서다.

류 씨의 세 살 된 개 '시루'도 그 중 하나다. 사흘 전 류씨는 불이 집 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시루의 목줄을 풀고, 함께 트럭으로 달렸다. 돌아갈 집이 사라져 류씨는 건물 내 텐트에서, 시루는 트럭 적재함 위에서 지내고 있다.

창밖의 시루를 보던 류씨는 "똑바로 먹이지도, 재우지도 못해 안쓰럽다"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머무는 여느 주민들처럼, 그 역시 이번 산불로 모든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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