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순한 산불이 아닙니다. 농업이 무너지고, 마을이 사라지고 있어요."
3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검게 그을린 밭과 묘목지 한가운데 선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역 농업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라고 경고했다.
이 전 장관은 이번 산불로 퇴직 후 고향에 돌아와 7년간 정성 들여 키워온 측백나무 '에메랄드 그린' 조경수 5천여 그루를 모두 잃었다. 피해액만도 2억~3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행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르면 피해 보상은 작물의 실제 가치가 아닌 면적 기준으로 종묘비와 비료비 정도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불로 많은 농가의 집과 농기계가 불타고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지만, 현행 제도하에서 복구를 위한 피해보상은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인 것이 현실이다.
그는 "산불이 발생한 경북 북동부 지역은 우리나라 사과, 자두 생산량의 50~60%를 책임지고 있고,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고추, 마늘 등 지역 특산물을 재배 중"이라며 "이번 화재로 집과 농기계 등 생산기반을 잃은 농가가 많아져 이대로라면 이들 품목의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격 폭등 등 국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고추 모종을 재배하던 하우스가 불에 탔고, 사과나무는 꽃눈이 화상을 입으면서 열매를 맺기 어려운 상태다. 현재 본격적인 농번기가 됐지만 산불로 육묘장과 농기계, 시설 전소 등의 농가 피해가 발생해 앞으로의 농사가 막막한 상황이다.
이 전 장관은 "고추 모종과 사과 꽃눈은 수확의 핵심인데 이게 타버리면 올해는 물론 내년 이후까지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져 과수나무를 다시 심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들 가운데서는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삶의 터전이 완전히 무너지자, 농사를 다시 짓겠다는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한 물리적 피해를 넘어 정서·심리적 상실감이 농촌 공동체 전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어서 "농가의 생산 의욕 저하와 생산 기반이 붕괴하면 결국 장기적인 물가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농가소득과 식량안보 관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산불로 인한 '마을 소멸' 현실화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전 장관은 "단촌면 구계리의 자연부락 외천마을은 원래 20여 세대가 살던 곳인데 이번 산불로 그 중 경제활동을 하며 농사를 짓던 두세 집조차 피해를 입었다"며 "가뜩이나 고령 사회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데 집마저 불에 타 농촌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그는 "집도 밭도 잃은 고령의 주민들이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 이곳에서 다시 집을 짓고 농사를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결국 자녀가 있는 도시로 떠나거나 이주할 수밖에 없고 마을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마을개발 사업과 연계한 공동주택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전 장관은 "우선 임시거처 제공 등 긴급구호조치가 끝나는 대로 정밀한 피해 실태 조사를 기초로 중·장기적으로 농업이 지속가능하고, 농촌지역사회가 유지될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농가 피해보상제도의 전면적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피해 복구와 지원에 대한 정부 부처·국회 관계자의 많은 방문으로 이재민들의 기대치는 높아진 상황에서 현행 법령대로 지원이 이뤄지면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것.
현행 농산물 재해 대책에 대해 그는 "소규모 피해는 아예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재건축이나 생산비 또는 시장가격과 동떨어진 현 보상제도로는 새로운 주택과 농기계, 시설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 피해 복구는 물론 농업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한다"며 "주택과 시설 장비를 포함해서 피해 보상의 현실화가 반영되는 보상 기준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여하다"고 촉구했다.
특히 인삼, 약용작물, 관상수 등 다년생 고부가 작물은 가격이 높음에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기준이 적용되고 있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임업분야 피해 복구와 관련해서도 그는 "떫은감, 밤, 대추, 표고버섯 등 6종에 불과한 임산물 재해보험 품목 확대와 함께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산림에 대해서는 단순 복구 지원을 넘어서 피해 임목까지 보상하는 내용으로 농림업 재해 대책의 전면적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전 장관은 "지역주민들이 다시 일어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이웃들과 오손도손 살아갈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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