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괴물 산불'은 불과 며칠 만에 산림 4만㏊를 삼켰다. 불길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졌고, 헬기와 진화 인력을 총동원했음에도 불씨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이번 산불은 3월 말에 발생했지만, 당시 기상 조건은 초여름에 가까웠다. 이제 특정 계절에만 대비하는 방식으로는 더는 대형 산불에 대응할 수 없는 국면이다. 전문가들은 산불 확산의 3요소인 지형·기후·연료가 결합한 이번 양상이 앞으로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경고한다.
지난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5개 시·군을 집어삼켰다. 산불이 지나간 마을은 전쟁터처럼 초토화됐고,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산불 대형화는 기후변화, 특히 지구온난화의 영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후변화가 직접 불을 내지는 않지만, 고온·건조한 날씨가 일상화하면서 산불의 빈도와 확산 범위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토양과 수목은 더욱 건조해지고, 마른 나뭇잎과 낙엽은 불쏘시개가 된다.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의성 지역 강수량은 각각 7.4㎜, 4.8㎜로, 평년 1월과 2월의 15.5㎜, 22.6㎜보다 크게 적었다. 대기 중 수증기량을 나타내는 상대습도 역시 하락했다. 의성의 2월 평균 상대습도는 57%로, 평년 61.3%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2일과 23일 의성의 낮 최고기온은 각각 25.2℃, 26.4도를 기록하며 초여름 수준에 달했다. 봄철 특유의 건조한 서풍 계열 바람과 더불어, 육지와 해수면 온도 차에 의한 국지적 돌풍까지 겹치며 불은 빠르게 확산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건조해지면서 대형 산불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중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이 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5~2024년)간 3월 전국 평균 최고기온은 13.9도로, 30년 전(1985~1994년) 평균 11.4도에 비해 21% 상승했다. 상대습도는 1980년대 71.3%에서 2010년대 67.4%로 낮아졌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건조한 시기가 길어지고, 강수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등 강수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대형화할 수 있는 기상 조건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산불 확산의 또 다른 주요 요인으로 소나무 등 침엽수림을 지목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소나무는 활엽수보다 1.4배 더 높은 열로 타며, 연소 시간도 2.4배 길다. 특히 송진 속 테르펜과 같은 정유 성분이 20% 이상 포함돼 있어 발화가 쉽고, 화염 지속력이 크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달려 있다. 이로 인해 나뭇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 태우고 확산하는 '수관화'가 쉽게 발생한다"며 "솔잎과 송진은 사실상 휘발유와 다름없고, 경북 북동부 산지 능선은 소나무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구간도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이 2020년 발간한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경북 지역 산림 중 소나무 숲이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면적으로는 45만7천㏊로, 강원(25만8천㏊), 경남(27만3천㏊)보다 월등히 넓다.
다만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대부분 인재에서 비롯된다. 의성 산불 역시 성묘객의 실화로 추정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2024년) 산불 발생 546건 중 입산자 실화가 171건(3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담뱃불 실화 35건(7%), 성묘객 실화 17건(3%) 등 실화에 의한 산불이 전체의 41%에 달했다. 이외에도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태우기 등 소각 행위로 인한 산불은 전체의 1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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