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 크고 맹렬해지는 산불…대응체계 전면개편 해야"

"봄·가을 체계론은 끝났다"…산불 대응, 계절 넘어 시스템 재설계 시급
대응 체계 일원화와 전문인력 육성 시급
노후 장비에 인력도 부족…헬기 확충 시급
드론·AI 기술 접목…실화 예방이 최우선 과제

29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하리 부근에서 산불이 재발화해 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하리 부근에서 산불이 재발화해 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은 계절을 잊었지만, 대응 체계는 여전히 봄과 가을에 머물러 있다. 이번 경북 산불은 서울 면적 절반을 태우며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지만, 지휘 체계 혼선과 장비 부족으로 초기 진화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산불이 연중화·대형화되는 현실에서, 소방과 산림청으로 나뉜 이원화 체계는 오히려 신속한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문 진화 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산림청이 직접 채용한 전문 인력은 500명 남짓에 불과하고, 지자체 진화대는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는다. 헬기 역시 상당수가 노후화돼 실제 운용에 제약이 많다. 전문가들은 진화 지휘권 일원화, 특수진화대 인력 확충, 고정익 항공기와 AI·드론 등 첨단 기술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응 체계 일원화와 전문인력 육성 시급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경북 대형 산불 사태를 계기로 대응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특히 초동 대응의 혼선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휘 체계 일원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행법상 산불 발생 시 산림 진화는 산림청이, 주변 민가 보호는 소방청이 맡도록 돼 있어,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산림청의 '2025년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에 따르면,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권자가 달라진다. 중·소형 산불은 시장·군수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대형 산불은 시·도지사가 지휘하게 돼 있다. 그러나 발령 기준과 지휘 체계가 복잡해, 초기 진화의 신속성과 통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신고는 119가 접수하지만, 소방이 산림청에 보고하고 다시 진화 지원 요청을 받는 방식은 시간이 지체된다"며 "산불 진화는 소방청이 전담하고, 산림 보존과 예방은 산림청이 맡는 일본식 모델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진화 인력의 전문성 확보도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 산불 대응 인력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공중진화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로 나뉘는데, 이 중 산림청이 직접 운용하는 전문인력은 공중진화대 104명, 특수진화대 435명에 그친다.

지자체 산불예방전문진화대의 경우 고령화가 심각하다. 2022년 기준 전국의 이들 평균 연령은 61세이며, 65세 이상이 33.7%를 차지한다. 대구는 진화대원 130명 중 70%가 60대 이상이며, 경북도 1천128명 중 절반 이상이 고령자(60대 이상)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수진화대 인력 확대와 교육훈련 강화가 필요하다"며 "훈련 수준과 투입 능력 모두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자체 진화대 고령화에 대한 단순한 문제 제기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교수는 "지자체 진화대는 1시간 내 소집이 가능한 지역 기반 인력으로, 나이보다는 지형 숙지와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며 "현장에 휴식 거점과 장비 보강이 이뤄져야 실효성 있는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후 장비에 인력도 부족…헬기 확충 시급

산불 진화의 핵심인 헬기 전력도 문제다. 산림청과 소방청이 보유한 헬기 상당수가 노후화 등의 문제로 가용이 어렵거나 담수 용량이 적다.

산림청은 대형 7대, 중형 32대, 소형 11대 등 모두 50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 중 60%가량은 도입한 지 20년이 지난 데다, 부품 공급 등 문제로 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2006년 도입한 담수 용량 3천ℓ의 카모프 헬기 29대 중 8대는 러시아산 부품 공급이 막혀 가동이 중단됐다. 여기에 지난해 추락 사고 이후 운용이 중지된 1대를 포함하면, 산림청 헬기 9대가 사실상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다.

소방과 지자체 헬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는 1천ℓ급(2019년식), 3천ℓ급(2005년식) 헬기 2대를, 경북은 올해 도입한 수리온 1대(2천ℓ)와 2006년식 소형 헬기(900ℓ) 1대를 운용 중이다. 지자체는 주로 임차 헬기를 활용하지만, 국비 지원이 없어 재정 부담이 크다.

이번 산불 진화에 투입됐다 추락한 헬기도 강원도 지자체가 임차한 30년 이상 된 노후 헬기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회당 8만ℓ 이상 물을 실을 수 있는 고정익 항공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산악이 많은 지형에서는 효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활주로와 담수지 같은 기반 시설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공하성 교수는 "헬기보다 담수량이 훨씬 많은 고정익 항공기는 광범위한 산불 진화에 적합하다"며 "산악 지역 맞춤형 운용을 위한 기반 시설과 시스템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드론·AI 기술 접목…실화 예방이 최우선 과제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산불 대응 시스템 구축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현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드론은 기체와 비행 안정성이 높고, 기술 개발을 통해 진화용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배터리 용량과 무게 개선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영주 교수는 "AI를 활용해 지형, 바람, 수종 등 지역별 데이터를 분석하고, 산불 확산을 예측하는 시스템도 의미 있다"며 "이런 기술은 대피 시점 판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연구위원은 "강풍과 야간 상황에서는 드론은 운명에 한계가 분명하다"며 "산불 발생지와 인접한 민가 건물 외벽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다만 기술은 보조 수단일 뿐, 산불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실화에 대한 방지와 예방이 핵심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국토가 건조해져 과거보다 산불 우려가 큰 만큼, 산불 조심 기간을 늘리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방화나 실화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교수는 "법적 처벌 형량만 높인다고 방재가 되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안전 불감증을 줄이는 것이다. 산에 라이터를 들고 가선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는 캠페인이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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