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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에도 어두운 대피소 분위기…갈 곳 잃은 이들은 망연자실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국민체육센터. 이날 이곳에 등록된 이재민은 243명에 달하지만 현장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었다. 남정운 기자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국민체육센터. 이날 이곳에 등록된 이재민은 243명에 달하지만 현장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었다. 남정운 기자

경북 북동부 산불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피소에 남은 이재민들의 상실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불길이 잡히자 피해가 비교적 적은 주민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갈 곳 없는 이재민들만 대피소에 남았다.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국민체육센터(이하 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이곳에 머무는 이재민 수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지난 27일 133명이던 이재민은 주불이 진화된 28일 215명으로 늘었고, 30일엔 243명까지 증가했다.

이는 임시로 마련됐던 초등학교, 경로당 등의 대피소가 순차적으로 철수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이 체육센터로 몰렸기 때문이다. 산불 당시 타지에 있던 자녀 집으로 몸을 피했던 이들이 주불 진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가, 집이 전소된 현실을 마주하고 다시 대피소에 들어온 사례도 적지 않다.

지금 대피소 분위기는 산불이 빠르게 번지던 초기보다 오히려 더 무겁다. 등록된 이재민이 200명을 넘었지만, 이날 텐트 밖으로 나와 움직이는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텐트 입구의 지퍼를 반쯤 올린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화재 당시를 공유하고 안부 전화를 받으며 시끌벅적했던 초기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분위기가 어두운 것은, 이제 이곳에는 돌아갈 곳이 완전히 사라진 이들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청송 파천면 덕천3리에 사는 김영숙(80) 씨는 "마을에 집이 27채 있었는데 그중 20채가 다 탔다"고 했다. 산불이 워낙 빠르게 지나가 일부 집은 흔적도 없이 전소됐고, 바로 옆집은 멀쩡한 경우도 있었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피해 정도가 엇갈리면서 남은 이재민들의 박탈감은 더 크다.

김 씨는 "오늘도 아침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며 "밭이라도 남았거나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동네 경로당에서라도 지내겠다고 나가는데, 나는 집이 다 타버려 갈 데가 없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어 "낮에는 좀 낫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 모두 조용히 누워만 있다. 다들 나처럼 앞으로 얼마나 더 수백 명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지 막막한 거겠지"라고 털어놨다.

반면, 피해가 비교적 적지만 대피소에 남아 자발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주민도 있다.

청송군 파천면 병부리에 사는 이모(60) 씨는 집 일부만 불에 탔지만 대피소에서 자원봉사단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씨는 "이틀 전까지는 대피소에 있다가 지금은 집에서 출·퇴근하듯 오가고 있다"며 "며칠 대피소에 있으면서 집을 완전히 잃은 분들을 보고, 집에 돌아가도 주변의 전소된 집들이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으니 천천히 고쳐 나가며 도움을 드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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