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드디어 집으로…고마웠어요" "돌아갈 곳 없어" 희비 엇갈린 대피소 주민들

잃었던 미소 찾고 짐 싸기 분주 "기쁘지만 또 불 날까봐 걱정도"
한 마을 안에서도 피해 제각각 "귀가하는 사람들 보니 박탈감"

30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서 한 이재민이 산불로 폐허가 된 집에서 쓸만한 가재도구를 찾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30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서 한 이재민이 산불로 폐허가 된 집에서 쓸만한 가재도구를 찾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경북 북동부권을 삼켰던 '괴물 산불'이 가까스로 진압됐지만 주민들이 몸을 피한 대피소의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기세등등한 화마를 피해 몸을 피했던 대다수 주민들은 잃었던 미소를 되찾고 각자의 삶터로 앞다퉈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거친 불길에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비어가는 대피소를 지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좌절하고 있었다.

◆간신히 되찾은 미소…"그단새 정들었네"

지난 28일 의성군 의성고등학교 체육관. 의성군의 산불 진화율이 95%를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피소 곳곳은 짐을 싸는 주민들로 분주했다. 작은 배낭은 옷가지로 터질 듯 부풀었고, 물통 등 작은 짐들은 비닐봉투와 종이가방 등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주민들은 함께 돌아갈 일행을 정한 뒤 귀가 인원을 직원에게 알려주고 대기 의자에 앉아 차량을 가져올 자녀나 지인을 기다렸다.

전날까지 80명이 머물렀던 이곳에는 이날 오전에만 40명이 집으로 떠났다.

옥산면에 사는 김경란(88) 씨가 의료 지원을 나온 직원에게 "그동안 고마웠어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 씨가 이곳에서 지낸 지는 이날로 닷새째다.

김 씨는 "대피소로 처음 오던 날 산에서 불길이 치솟고 헬기 6대가 날아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불이 다 꺼지고 집에 간다니 참 기쁜데, 며칠 새 정이 들었는지 아쉽다"고 웃었다.

옥산면 주민 홍정숙(80) 씨는 "대피소로 온 후에 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큰 피해는 없더라"며 "바람이 불어서 불이 다시 날까봐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간다니 좋다"고 했다.

의성고등학교에서 사흘째 급식 봉사를 한 성민원 군포제일교회 관계자는 "주민들이 건강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돌아갈 삶터엔 잿더미만…"마음 무거워요"

잔불 진화까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일부 주민들은 아직 대피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집이 완전히 불에 타 돌아갈 곳이 남지 않았거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이들이다.

지난 26일 살던 집과 가게가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입은 김모(77) 씨는 "불길이 보이긴 했는데 소방차도 보였고, 길가에 집이 있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몸만 빠져 나왔는데 모두 타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김 씨는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무거운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나이도 많은데 자식에게 기댈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산불이 다시 살아날 것을 걱정하는 주민들도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단촌면에 사는 김봉순(70) 씨는 "집이 마을 안에서도 좀 떨어져 있는데다 산과 가까워 불이 옮겨 붙기 쉬운 환경이다. 바람이 불면 다시 불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며 "일시 대피소에서 하루 더 버텨볼 요량"이라고 말했다.

◆대피소에 남은 이재민…"박탈감 커"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이곳 이재민은 매일 늘어나는 추세다. 27일 133명이었던 이재민은 주불이 진화된 28일 215명으로 급증했고 이날 243명이 됐다. 주불이 잡힌 뒤 급하게 설치됐던 초등학교나 경로당 등 임시 대피소 상당수가 철수한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이 센터로 몰려서다.

이곳 분위기는 하루가 무섭게 산불이 확산하던 대피소 설치 초기보다도 무거웠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경미한 주민들이 삶터로 돌아가면서 대피소에는 갈 곳을 완전히 잃은 이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청송 파천면 덕천3리에 사는 김영숙(80) 씨는 마을에 있는 집 27채 중 20채가 타버렸다고 했다. 산불 확산 당시 불길이 번질 시간도 없이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처참할 정도로 타버린 곳이 있는가 하면, 전소된 곳 옆집은 멀쩡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마을 안에서도 주민들의 피해 정도가 엇갈린 탓에 아직까지 대피소에 남은 이재민들의 박탈감은 더하다.

김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봤다. 최소한 밭이 남아 있거나 집에 기르던 동물이 있는 사람들은 동네 경로당에라도 가겠다며 나갔는데 나는 이미 살던 곳이 다 타서 갈 곳이 없다는 게 너무 힘들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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