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동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수백 년을 버텨온 자연의 유산들을 잇따라 집어삼켰다. 돈을 주고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수령 수백 년의 보호수들이 사라지거나 회복이 불투명해지면서 산림 생태계는 물론 지역 정체성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에 위치한 국가 산림문화자산 '목계숲'과 인근 '중평숲'이 이번 산불로 사실상 전소됐다. 목계숲은 과거 수정사 스님이 "마을에 불운이 끼지 않도록 방풍림을 조성해야 한다"고 권유해 마을 사람들이 심은 소나무 숲으로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정신적 지주이자 문화적 상징이었다. 이들 숲은 최근에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캠핑 명소로도 주목 받아왔다.

안동시 일직면 광연리에 있던 수령 680년의 느티나무 보호수 역시 이번 화재로 크게 훼손됐다. 높이 20m, 둘레 8.5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세 차례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전설의 수호목으로 조선 초기부터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대상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금줄을 걸고 제를 올렸고, 나무가 있는 마을은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마는 이 느티나무도 비켜가지 않았다. 불길에 휩싸인 나무는 결국 일부가 폭삭 타내려 앉았고, 현재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모두 가지가 잘려나간 상태다.
마을 주민은 "마치 마을의 큰 어른을 잃은 기분"이라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경북 북부 산불 피해는 안동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개호송 숲'까지 확산됐다. 이 숲은 조선 성종 때 인공적으로 조성돼 반변천변을 따라 수백 년간 자리를 지켜온 소나무 군락지로 백운정과 함께 명승 제26호로 지정돼 있다. 방풍과 수구막이 기능을 해온 이 숲은 대홍수 이후에도 복구되며 이어져 온 역사의 산증인이었지만, 이번 산불로 상당수의 소나무가 뿌리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산불이 발생하자 소나무에서 나온 송진이 불쏘시개처럼 작용해 불길이 빠르게 번진 점은 진화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국가유산청과 산림 당국은 복구 가능성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했지만, 원형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의 천연기념물 제399호 '만지송'도 일부 가지와 밑동이 그을려 손상을 입었다. 수령 400년 이상의 이 노거수는 독특하게 갈라진 가지 모양으로 유명했다. 또 아이를 원하는 이들이 술을 바치며 기원할 정도로 신성시되던 나무다.
인근 주민은 "아이 낳는 나무라며 찾아오던 손님도 많았는데, 앞으로 회복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 위치했던 또 다른 만지송(천연기념물 제247호)도 이번 산불로 일부 그을림 등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원형은 보존한 상태로 전해진다.
국가유산청과 산림청 관계자는 "만지송은 고사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새순 발아 여부 등을 두고 올해 봄부터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라며 "자연유산의 복원은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 시야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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