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산불이 사그라들자, 경북 주민들이 복구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모듈식 주택이 들어설 부지를 직접 확보하고, 피해 신고 접수 현장에선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금융과 통신 등 기초 시스템도 하나둘 회복되고 있다. 현장 조사 전에 집을 고칠 수 없는 등 행정 절차는 더디지만,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되찾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안동시는 지난 28일부터 오는 4월 6일까지 피해 조사 신청을 순차적으로 받기로 했다. 31일 오전 11시쯤 찾은 임하면 행정복지센터 2층 회의실엔 피해 신고를 하려는 주민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직원들은 피해 건물의 위치와 규모, 공공주택 임대 신청 여부 등을 확인하며 '사회재난 피해 신고서'를 작성했다.
몇몇 주민은 급하게 이면지에 급하게 적은 농기구 목록을 내밀기도 했다. 혹시라도 빠뜨린 항목이 있을까 걱정돼,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이웃끼리 모여 "고추 농사지어다 둔 것, 농약이랑 비료도 꼭 적어야 한다"며 서로를 챙겼다.
박용국(65) 씨도 이날 자신의 집과 농장 옆 가건물, 농기구 피해를 신고했다. 그는 "비료랑 농작물, 기계가 있던 가건물 피해가 가장 크다"며 "무허가 건물이라 복구 지원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상 신고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불로 전소된 은행 건물 대신 일부 금융 서비스는 임시로 복구됐다. 피해 지역 곳곳에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이 설치된 이동점포 버스가 들어선 덕분이다. 이날 한 어르신이 30만 원을 인출하려고 임하면에 설치된 이동점포를 찾자, 직원이 직접 ATM 사용을 도왔다.
이동점포를 운영하는 NH농협은행의 조희장 나이스CMS 과장은 "필요에 따라 모두 4대의 이동점포 버스가 순환 운영될 예정이다. 현장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ATM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협 건물 복구가 늦어질 경우 임시 부스를 세워 대출 등 여신 업무도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불로 끊겼던 통신망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우선 경찰과 소방이 사용하는 긴급 통신망부터 복구한 뒤,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는 상용망도 순차적으로 정비 중이다. 긴급 통신망 차량을 관리하는 이승호 KTMOS 대리는 "각 기지국의 장비 피해 여부를 확인한 뒤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며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지역엔 이동식 통신 지원 차량을 배치해 인터넷 연결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행정 조치만을 기다리지 않고, 복구를 위해 직접 움직이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원리 주민들은 모듈식 주택 설치 부지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박귀자 원리 이장은 "논의 끝에 한 주민이 사용하던 1천500여 평(5천㎡)의 밭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해, 40여 동의 모듈식 주택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며 "그 덕분에 마을 가까이에 머무를 수 있어 복구 작업에도 더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건물 철거와 시설 수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계 당국이 피해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해야 하므로, 조사 전에 기물을 철거하면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임하면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집을 수리해도 되는지 묻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조사 완료 전까진 손대지 말아야 한다"며 "31일까지 임하면에서 접수된 피해 신고는 약 500세대에 달해, 언제 복구가 본격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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