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을 비롯한 영남 지역 곳곳이 사상 최악의 산불로 잿더미가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하늘만 원망한다.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에서 불을 끄던 진화대원들, 진화 헬기 조종사도 순직(殉職)했다. 진화대원들의 장비는 초라했다. 헬기는 '괴물 산불'을 막기에 턱없이 낡고 부족했다. 대형 산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의 위험도 커졌다.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은 이 난리통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예비비 삭감'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정쟁(政爭)을 벌이고 있다. 나라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 권력 쟁탈에만 혈안이다. 그들에게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생각이 됐다.
지난겨울, 영화 '소방관'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슬픔과 분노가 섞인 눈물이다. '소방관'은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소방관 순직 6명·부상 3명)를 다룬 영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지옥불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헌신(獻身)이 고맙고 슬펐다. 방수복(방화복 아님) 입고 목장갑(방염 장갑 아님) 끼고, 인명을 구조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소방관들의 장비와 처우가 개선됐다지만, 참사(慘事)가 터지면 아직도 부끄러운 실상이 드러난다. 왜 이런 일은 되풀이되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은 묻고 또 묻는다.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의대 증원으로 빚어진 진료 공백,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 가장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 그리고 참담한 '간병 살인'…. 국가의 기능부전(機能不全)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정치'의 책임이 크다. 정치는 '국회'란 기구, '입법'이란 장치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다. 또 '예산권'을 통해 정부의 살림을 마련한다. 이 체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지금의 나라 꼴이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헌법 제1조 1항을 거론한 것은 '공화주의'(共和主義)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익숙한데, '공화주의'는 다소 낯설다. 여야의 극단적 대결,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소추, 진영의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등 정치·사회 문제의 뿌리는 공화주의 정신의 결핍에 있다. 공화주의는 '국가란 무엇이냐'란 문제와 닿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는 헌법에 녹인 여러 가치들을 조화롭게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함께 잘살고,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의미다.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는 자유, 법치, 공공선(公共善), 시민의 덕성(德性)이다. 김경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저서 '공화주의'를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경제 논리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될 때,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공공의 영역은 질식되고 만다. 공공의 영역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동료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활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주의는 한 가지 논리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공공성의 영역을 질식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정치적 내전(內戰), 사법부 불신, 공적 영역의 증발, 공론장(公論場)의 붕괴로 국가가 흔들릴 때,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은 터져 나온다. 너와 나의 생각, 우리와 그들의 가치가 함께 뜻을 모으는 것(共和), 보통 시민들의 바람이다.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고,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꽃을 피워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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