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동부를 덮친 초대형 산불이 잦아들자,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임시 거주지를 설치하는 화물차가 분주히 움직였고, 전소된 금융·통신망도 하나둘 복구되며 마을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임시 거주 '모듈러주택' 속속 설치
31일 오전 11시쯤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권정생어린이문학관(문학관). 대형 화물차가 오가며 컨테이너를 실어 날랐다. 전날부터 이곳에는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 시설인 '모듈러주택'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경상북도는 이 부지에 2층 규모의 조립식 주택 20채를 건설 중이다. 주택 한 채는 약 8.2평(27㎡)으로, 전기·수도·배수시설을 포함해 냉난방 기능까지 갖췄다. 이재민 1가구당 1채씩 배정되며, 1인 가구의 경우 2~3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일부는 부지 활용과 인근 상권과의 조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인근 주민 고모(66) 씨는 "주말이면 문학관에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이 몰리는데, 주차난은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동시도 자체적인 임시 주거 시설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는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 거점시설 인근에 모듈러주택을 설치해 주민 편의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현재 안동시 풍천면과 일직면, 남후면 등 7개 피해 지역의 609가구가 주거 지원을 신청한 상태다. 시는 장기적으로 약 1천 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마을별로 회관이나 노인정 등 거점 시설과 가까운 곳에 임시 주택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 조사 본격화…금융·통신망도 속속 회복
임시 거주지 마련과 더불어 피해 조사와 행정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안동시는 지난 28일부터 오는 4월 6일까지 피해 조사 신청을 순차적으로 받기로 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찾은 임하면 행정복지센터 2층 회의실엔 피해 신고를 하려는 주민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직원들은 피해 건물의 위치와 규모, 공공주택 임대 신청 여부 등을 확인하며 '사회재난 피해 신고서'를 작성했다.
몇몇 주민은 급하게 이면지에 급하게 적은 농기구 목록을 내밀기도 했다. 혹시라도 빠뜨린 항목이 있을까 걱정돼,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이웃끼리 모여 "고추 농사지어다 둔 것, 농약이랑 비료도 꼭 적어야 한다"며 서로를 챙겼다.
박용국(65) 씨는 "비료랑 농작물, 기계가 있던 가건물 피해가 가장 크다"며 "무허가 건물이라 복구 지원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망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피해 지역에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을 탑재한 이동점포 버스를 운영 중이며, 향후 총 4대를 순환 투입할 예정이다. 현장 직원들이 고령의 이재민들을 도와 직접 ATM 사용을 안내하고 있으며, 건물 복구가 늦어질 경우 임시 부스를 통한 여신 업무도 계획하고 있다.
긴급 통신망 복구도 진행 중이다. 경찰·소방용 통신망을 우선 복원한 뒤, 일반 주민이 사용하는 상용망도 정비에 들어갔다. 긴급 통신망 차량을 운영 중인 이승호 KTMOS 대리는 "피해 장비를 확인한 뒤 이동식 통신 지원 차량을 설치해 이재민들이 머무는 지역의 인터넷 연결을 우선 복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임시 주택 부지를 확보하는 데 나섰다. 일직면 원리 주민들은 논의를 거쳐 한 주민이 사용하던 밭 1천500평(약 5천㎡)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며, 그 부지에 모듈러주택 40여 동을 들일 수 있게 됐다. 박귀자 원리 이장은 "마을 가까이에 거주할 수 있게 돼 복구에도 더 힘을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복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피해 신고 후 현장 조사를 마치기 전에는 집을 수리하거나 철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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