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박승혁] 영덕의 젊은 농부 신한용 씨

경북부 박승혁
경북부 박승혁

신한용(36) 씨는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9년 전 고향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것을 다짐했다. 경기도 수원 아가씨는 영덕살이가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이 될 신 씨만 믿고 결혼 후 내려왔다.

맨손으로 사과, 배, 복숭아 농사를 착실하게 일군 아버지를 보며, 고향의 친근함을 믿으며 그는 영덕에 터를 잡았다.

2년 뒤 아버지가 사과밭에서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영덕읍 소재지와 1시간가량 떨어진 이곳에 구급차가 제때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허망하게 떠나보낸 그는 또 다른 어르신이 같은 일을 당하게 할 순 없다며 영덕군에 매달리다시피 해 고향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구급차 시스템 구축을 약속받았다.

그는 아버지 없이 홀로 7년을 농사지으며 빚도 줄이고 새로운 묘목도 들이는 등 고향살이에 즐거움을 느꼈다. 다섯 살 아들이 몸이 아파 도시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고되긴 했지만 삶의 목표가 실현되는 기쁨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그의 삶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청송에서 영덕으로 넘어온 불이 고향을 삼키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지중지 키우던 나무와 집 등 가진 모든 것이 불탔다.

그 와중에도 마을 주민은 단 1명도 다치지 않았다. 면사무소 대피 명령이 늦었는데도 모두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 씨의 빠른 대처 덕분이었다.

어르신들이 집과 밭이 아까워 머뭇거리는 찰나, 불은 이미 산을 넘어 마을을 넘봤다. 신 씨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어르신들을 들쳐 업고 차량에 몸을 실었다. 읍내로 내달리는 순간에도 화재 진행 상황을 모르고 마을로 향하는 차량들을 돌려세웠다.

그는 3천 그루가 넘는 나무와 집을 잃었지만 넋 놓고 있지 않았다. 집 잃은 어르신들이 남아 있는 밭을 돌본다며 불탄 마을에 머무는 것을 보고, 그는 지인에게 부탁해 컨테이너 3동부터 빌렸다.

때마침 전국에서 구호품도 밀려왔다. 부산의 한 사업가는 어르신들 추위가 걱정된다며 창고에 보관 중이던 옷가지를 들고 올라와 신 씨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타심. 다른 이를 향한 그의 선한 마음과 행동은 '괴물 산불'이 할퀸 상처를 보듬는 치료제이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혜안을 준다.

당국은 재해 시 대피 문자를 최대한 빨리 전달해야 한다. 만약 통신 두절로 대피 문자가 늦다면 상황을 가장 먼저 접하는 면사무소 공무원들이라도 현장에 나가 주민들의 대피를 도와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산불의 경우 신 씨와 같은 과감한 현장 대처는 더욱 중요하다. 불이 번질 걸 알면서도 막을 수 있는 인프라가 현장에 하나도 없고, 산불 확산 시 강제 대피를 명할 수 있는 법조차 없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대피 외엔 없다.

신 씨는 "당시 산불 규모를 감안했을 때 영덕으로 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 군민 대피령을 내릴 필요가 있었고, 그게 없었던 게 아쉽다. 귀와 눈이 어두운 어르신들의 특성에 맞는 대피 체계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영덕에서 최대 사상자가 발생한 점을 생각하면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가 자신의 피해 보전보다 가장 먼저 컨테이너를 빌려 어르신들의 쉼터부터 만든 이유도 보상 차례를 기다리다 때를 놓칠 것을 우려한 조치다.

지금 영덕군은 이곳저곳에서 몰려오는 피해 호소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불은 꺼졌지만 주민들의 가슴은 지금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따뜻하면서도 뛰어난 행정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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