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이 다 타버려 몇 년간 사과는 끝났습니다."
경북 청송과 안동 등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가 대형 산불로 초토화되면서 올해 사과 출하량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경북 북부권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역 농업은 물론 과일 유통 시장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청송군은 전체 3천544㏊의 사과 재배면적을 보유한 핵심 산지다. 지난해에만 7만5천t을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10%를 담당했지만, 이번 산불로 202.3㏊의 과수원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1일 현장에서 만난 청송군 파천면 덕천3리 정상충(70) 이장은 "사과나무가 산 중턱에 많아 불길을 그대로 맞았고 나무들이 누렇게 변해가고 꽃눈도 죽었다"고 말했다.
꽃눈이 불길이나 열기에 화상을 입으면 열매가 달리지 않아, 당장 올해 수확은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피해는 단지 불길이 지난 곳에만 그치지 않는다. 화염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들조차 고열로 인해 줄기가 마르고, 열기로 꽃눈이 말라버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화재 당시 열기는 최대 1천℃까지 치솟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번 산불은 사과 저장 인프라에도 치명타를 입혔다. 사과는 저장성이 높지만 지역 내 저온저장고도 상당수가 전소돼 이미 수확해 보관 중이던 사과도 잿더미로 변했다. 일부 농가는 농막, 농기계, 관수 설비까지 모두 불타버렸다.
안동 임하면 추목리 이종준(67) 씨는 "꽃눈이 전부 타버려서 과수원을 아예 폐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집도, 농기계도 다 타버려 살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화재는 안동·청송 등 사과 재배면적 2만46㏊를 포함한 경북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60%에 달하는 규모로 생산량 감소는 단기간 가격 상승은 물론 장기적인 공급 불안정까지 우려되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 이양우(65) 이장은 "집과 과수원이 붙어 있는 농가가 많아 동시에 전 재산을 잃었다"며 "마을 40여 채가 전소해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파천면 덕천1리 김순한(72) 이장은 "우리 마을은 물이 나오긴 하지만 수압이 약해 농작물에 물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기가 끊겨 난방도 안 되고, 저녁에는 춥고 암흑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복구 여건도 열악하다. 일부 지역은 전기·수도·통신이 끊긴 상태로 과수에 물을 주는 것 조차 할 수 없어 남은 사과나무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안동 길안면 백자리 한 주민은 "이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며 "눈을 감으면 불덩이가 날아드는 장면이 떠올라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문가들은 "꽃눈 피해는 육안으로 보기 어렵지만 열매 생산에 치명적"이라며 "고온·건조·강풍이 겹친 이번 화재는 단순 산림 손실을 넘어 지역 농업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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