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학 시절, 법학을 전공한다는 점에 자긍심을 가진 때도 있었다. 법의 공정한 적용을 통해 약자를 보호하고, 종국적으로 사회 정의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자긍심(自矜心)은 실망감으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법이란 거미줄과 같아서 힘센 사람은 그것을 뚫고 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독립적 예산 편성과 투명한 재판관 인사 제도 등을 골자로 하는 '사법부의 독립'이 뒷받침되어야만 법이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알면 알수록, 공정한 법의 적용은 구조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사법(司法) 제도의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왔다. 존경받는 법조인이 많이 배출된 덕분이다. 그들의 헌신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런 맥락에서 로스쿨의 학생들에게도 존경받는 법조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곤 한다. 부패하지 말라고, 권력을 사적 용도로 활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5년 대한민국은 큰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대권 경쟁에만 몰두한 채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이 정치적 과정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재판 절차에 의해 해소되는 '정치의 사법화'가 국가 전체를 뒤덮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양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늘어졌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1심과 2심 재판의 판결이 상반되게 선고되면서,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일부 재판관도 마찬가지다. 재판관의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부 재판관에 관한 우려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신뢰를 까먹고 있는 꼴이다.
4월 4일로 다가온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국민은 그 인용 여부에 숨죽이고 있다. 인용(파면), 기각 어느 경우든 그 후유증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이미 국민은 쪼개졌고, 국가도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 마당에, 야권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재탄핵, 국무위원에 대한 줄탄핵을 예고한 상태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침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양극 정치의 폐단(弊端)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어쩌면 후일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업보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위기 앞에서, 재판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법리에 부합하고 흠결 없는 결정을 하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재판관은 개인의 이익이나 성향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재판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 이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내리는 절대적 명령이다.
국민은 재판관에게 권위와 존경을 부여해야 하며, 동시에 재판관은 '공정한 재판'으로 응답해야 한다. 존경받는 재판관의 첫 번째 덕목이 바로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엷어진다면 그만큼 재판관에 대한 권위와 존경도 엷어짐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재판관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위기 앞에서 재판관이 용기를 내서 공정하게 재판할 때,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하나로 뭉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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