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선 정치신인'에서 단숨에 대통령직에 올랐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시간이 1천60일만에 막을 내렸다.
헌정사상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이자 '별의 순간'이라는 평을 들으며 정치권에 입문했지만 탄핵된 두 번째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전임 정부와 차별화 전략을 펼쳤지만 12·3 비상계엄으로 단명을 자초했다.
1994년 대구지검에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 전 대통령은 권력에 맞선다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쌓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서 수사팀장으로서 그해 10월 서울 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윗선의 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남긴 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후 윤 정부이 내세운 슬로건인 '공정과 상식' 이미지를 굳히는 데 일조했다.
한직을 떠돌던 윤 대통령은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으로 합류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구속시키며 복귀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발탁 후 2년 뒤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는 등 승승가도를 달리던 윤 전 대통령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관련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한 수사로 각을 세웠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 등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정직 2개월 징계를 청구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뚝심 있는 이미지로 급부상했고 유력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며 '별의 순간'을 거머쥐었다.
윤 전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서 정권을 교체하겠다며 제1야당(당시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나서며 정치에 발을 디뎠다. 이후 1년 만인 제 20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며 '0선 출신' 정치 초보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청와대 대신 국방부 자리로 대통령실을 옮겨 '용산 시대'를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유시장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정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건전 재정 기조를 내세웠고,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철저히 다른 길을 가려 했다. 이와 함께 노동·연금·교육·의료 개혁에 저출생 대응을 더한 '4+1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탄핵 국면에서는 관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무속인 개입설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여소야대로 시작한 정국도 지난해 4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대패하며 야당이 압도하는 상황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각종 특검법과 당시 여권과 상충하는 법률안으로 휘몰아쳤고, 윤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막아섰다. 취임 후 무려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기에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까지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강골 검사'였던 윤 전 대통령에게 불통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극으로 달하던 갈등은 지난해 12월 3일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로 정점을 향해갔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1월 15일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국가 원수의 고유 통치 권한으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방어벽을 쳤으나 계엄의 후폭풍은 이를 넘어섰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구치소에 수감된 채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계엄은 야당의 입법 폭거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항변했으나, 결국 1천60일 윤 정부가 막을 내리는 결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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