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엄재진] 혼돈의 123, 경쟁의 60, 고통의 149

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부터 지난 4일 탄핵 선고까지 대한민국을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갔던 '123일'이 끝났다. 이제 대결과 경쟁, '60일'의 대통령 선거 기간이 시작됐다.

이 정치의 시간들이 자칫 경북 북동부 대형 산불 재난이 몰아친 '149시간'의 기억들을 덮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강하다.

지난 123일의 기억들, 60일 앞에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감들이 현재 진행형인 대형 산불 재난에 따른 국민들의 고통과 좌절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결단코 그래서는 안 된다.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 속에서도 경북 북동부와 경남 지역 대형 산불 피해 이재민들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고통과 인내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결정문에서 '대통령은 국민들의 신임을 배반했다'고 적시했다.

결정문 곳곳에 '주권'과 '국민'을 언급했다. 또, 갈등은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그만큼 정치의 목적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 대선 국면이 블랙홀처럼 정치권을 빨아들일 것이다. 지난 123일이 그랬듯이 정치권은 양 진영으로 갈려 대통령 자리를 두고 사생결단할 것이다.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5개 지역 국민들은 걱정이다. 대권을 향한 그들에게 이재민들이 처한 현실이 눈에 보일지. 극한 진영 대결 속에서 산불로 삶터를 잃은 국민들의 고통의 소리가 들리기나 할지.

지난달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24일 안동으로, 25일 청송·영양·영덕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 기간 2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 갔다.

여의도 156개, 축구장 6만3천245개 면적에 해당하는 4만5천여㏊가 피해를 입었다. 역대 최대 산불 피해 규모다.

4천여 채가 넘는 삶의 터전을 태웠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2천750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재민의 삶을 살고 있다. 체육관에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아니면 친인척 집을 오가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진화 장비 대형화, 야간 진화 시스템 마련, 대피 표준 매뉴얼 개선 등 산불 대응 시스템의 대전환을 이끌어 대한민국 산불 대응의 선진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정희용 국회의원은 가칭 '경북산불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여러 분야에 걸친 총력 지원으로 위기를 신속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총괄해 줄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3천여만원의 보상이 고작이다. 지자체가 나서 조립식 주택이나 모듈 주택을 지어 임시 주거시설로 공급하지만, 새 집을 짓기는 막막하다. 이들의 고통과 현실에 정치권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숱한 정치인, 대권 주자들이 재난 현장을 다녀갔다. 저마다 정부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가 산불 대응 시스템 대전환을 밝힌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대선 도전 소식이 이재민들에게 그들이 외면받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123일이 가져다준 극심한 갈등이 60일 후 대통령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극한 경쟁으로 치달아, 자칫 전쟁 같았던 149시간의 폐해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의 목적과 이유는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는 정치인은 사라져야 한다. 선거의 시간,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정치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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