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34>별미국수기행 (상)

"국수 한 그릇이예~" 정겨운 할매표 국수 면면히 이어져 온 맛

밀가루 국수는 고려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참 먹기 힘들었다. 6.25한국전쟁 이후 미국 원조 밀가루 덕분에 국수르네상스가 개막될 수 있었다. 면발을 쥐고 있는 모정의 손가락이 많은 그리움을 몰고온다.
밀가루 국수는 고려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참 먹기 힘들었다. 6.25한국전쟁 이후 미국 원조 밀가루 덕분에 국수르네상스가 개막될 수 있었다. 면발을 쥐고 있는 모정의 손가락이 많은 그리움을 몰고온다.
제분기가 없던 구한말만 해도 각 가문에서는 미세한 분말을 얻는 국수방이 있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엿볼 수 있는 달성군 하빈면 동곡할매칼국수 내 제면 작업대 모습.
제분기가 없던 구한말만 해도 각 가문에서는 미세한 분말을 얻는 국수방이 있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엿볼 수 있는 달성군 하빈면 동곡할매칼국수 내 제면 작업대 모습.
조밥이 따라나오는 안동 선미식당의 안동국시.
조밥이 따라나오는 안동 선미식당의 안동국시.
금와식당의 대구식 누른국수.
금와식당의 대구식 누른국수.

◆안동국시와 누른국수

국수. 한글일까 한자일까? 식품사학자들은 국수(掬水)란 말에 밑줄을 긋는다. 앞의 국 자는 '손으로 움켜쥐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안동건진국시를 생각하면 의미가 와 닿는다. 한번 끓인 면발에 탄력을 올리기 위해 찬물에 한번 헹구는 광경이다.

국수란 단어만 들으면 빙그레 미소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스님들이다. 승가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 한다.

고려까지만 해도 밀가루는 너무나 귀했다. 지금과 달리 메밀‧보릿가루가 흔했다. 50년대 미국 원조물품 덕분에 한국에도 국수(분식)르네상스 시대가 개막된다.

◆장수의 심벌

국수는 '장수의 심벌'이다. 어느 날 중국 한무제가 연회석상에서 국수를 받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동양 최장수 인물인 삼천갑자 동방삭이 기지를 발휘한다. '황제폐하, 요순시대 800세까지 산 팽조는 얼굴이 무척 길었습니다. 오늘 국수는 그보다 몇 배나 더 긴 것 같습니다. 주방장이 무병장수를 위해 국수를 만들었나 봅니다' 이 말에 군주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불문가지.

아무튼, 국수의 종주국은 중국이다. 너무나 많은 국수가 산재해 있다.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도 국내 최초로 국수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그는 2002년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서쪽 칭하이성(靑海城)의 신석지 유적지에서 발굴한 화석화된 국수를 현지 확인하기도 했다.

전국에는 별별 국수가 다 존재한다. 강원도 막국수‧올챙이국수콧등치기국수, 경남 거창의 어탕국수, 대부도 바지락칼국수, 옥천 생선국수, 전라도 팥칼국수, 청양의 구기자 칼국수, 문경의 오미자칼국수, 상주의 뽕잎칼국수, 제주도 고기국수, 진주냉면, 의령소바, 포항 모리국수, 부산 밀면….

대한민국에서 '국수1번지'란 칭호를 들을 수 있는 고장이 몇 있다. 크게 대구와 부산, 안동, 그리고 제주도 정도다. 서울은 국수보다 냉면이 단연 압권이다. 부산은 칼국수는 아니고 소면(선어회국수, 비빔당면) 문화가 강하다. 반면 대구는 칼국수가 강세다.

◆추억의 국수방

안동은 국수라 하지 않고 '국시'라 한다. 두 종류의 칼국수가 존재한다. 건진국수와 제물국수로도 불리는 누름국수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경북 북부 유명 반가마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국수방'이 있었다. 국수방?

음식연구가 김영복 씨가 영천시 영천읍 도남동 광주안씨 국수방 얘기를 필자한테 들려주었다. 도동촌에서는 천정과 사방벽을 창호지로 도배한 국수방을 따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맷돌로 밀을 간 후 큰 부채가 곡식 등을 까불러서 쭉정이, 티끌, 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걸러낸뒤 '칭이'라 불리는 키 등을 갖고 바람을 일으키면 분말은 천장이나 벽에 붙고 밀기울은 방바닥에 남았다. 도동국수에서는 특이하게 민물수초인 '청못 말'을 올린 게 인상적이었다. 솜씨 좋은 종부는 소면만큼이나 가늘 게 썰 줄 알았다. 사돈 등 귀한 손님이 오면 건진국시를 대접한다. 식구끼리 간식으로 해먹을 때는 제물국수로 만족했다. 건진국수는 메밀소바처럼 2단계로 나눠 요리했다. 제물국수는 면을 찬물에 헹구지 않고 한 번에 끓여내는 게 특징이다.

건진국시의 육수 재료는 꿩과 은어였다. 대구와 달리 멸치 육수는 좀 멀리한다. 그리고 면을 만들 때 허기를 조금 면할 수 있게 콩가루를 30% 내외 섞었다. 건진국수는 오랫동안 문중 속에 갇혀 있었다. 안동 명문 반가의 내림음식인 탓이다. 그래서 안동 관광객은 안동국시를 맛보기 힘들었다. 50여 년 전 제일 먼저 건진국수 스타일의 안동국시 전문점을 낸 사람은 김옥주 씨다. 삼산동 웅부공원 앞에서 '선미식당'을 열었다. 문경 새재묵조밥처럼 칼국수 옆에 항상 조밥이 따라 나왔다. 후발주자인 '옥동손국수'와 함께 안동국수 핫플로 사랑받고 있다.

◆안동국수 대구 유입

특히 안동국수 명맥을 서울로 파생시킨 무서운 할매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숙 여사의 이화여대 선배인 김남숙 할매다. 안동국시가 뜬 건 1993년. 김 전 대통령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취임 초기 '칼국수 오찬'이란 파격적 발상을 하게 된다. 첫 국무회의, 연이은 여·야 영수회담, 청와대 방문객과 출입기자들에게도 칼국수를 권했다. 이 사실이 매스컴에 대서특필되면서 청와대 칼국수, YS 칼국수는 전국적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특히 야당 총재 시절 김영삼은 여러 칼국수집을 돌아다닌다. 김 전 대통령이 맘에 두고 있었던 식당은 양재동에 있던 '소호정(1985년 오픈)'이었다. 그 집 여사장 김남숙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숙 여사의 대학 선배였다. 손 여사도 다른 집보다는 이화여대 출신으론 유일하게 칼국수 식당을 오픈했다는 사실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고 김 전 대통령도 그걸 눈치챘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소호정이 3개월간 청와대 칼국수 요리를 책임진다. 소호정은 서울에 상륙한 첫 안동국시 식당이다. 이 흐름이 대구에도 스며들어 2000년대 들어 대구에도 안동국시도 퍼지게 된다. 김홍철 씨가 그 국수의 흐름을 2005년 9월 '안동국시'란 브랜드로 대구시 수성구 어린이회관 서편으로 끌고 온다.

◆대구는 누른국수

대구에서는 그냥 국수라 하면 어감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누른국수'라 해야 피가 통한다. 누른국수는 일명 '대구칼국수'로도 불린다. 콩가루를 넣어 누른색이 난다고 '누른'이 되었다고도 하고, 홍두깨로 넓고 얇게 누른다고 '누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대다수 풍국면 같은 공장표 건면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중구 동산동(도로명으로는 서성로) 엘디스리젠트호텔(옛 동산호텔) 동쪽 굽어진 도로 모퉁이에 있는 금와식당. 금와(金蛙), '금개구리'란 의미다. 부산에서 대구로 온 1대 사장 김덕분 할매. 동성로 동인호텔 옆에서 20년 이상 장사를 했다. 이후 남동생인 김영배 씨 내외가 가업을 이어받았고 89년 현재 자리로 이전해 왔다. 이전한 뒤부터 할매는 가업에서 손을 뗀다. 기술을 다 이전한 탓이다. 그 할매는 '차마담'으로 불렸고 식당은 '금뚜꺼비집'으로 불렸다.

 메뉴판에는 누른국수란 명칭이 없고 그냥 칼국수로 적혀있다. 굳이 누른국수라 하지 않아도 단골에게 주지의 사실이라 여긴다. 면발은 오래전부터 북구 고성동 2가에 있는 월성국수(현재 통일식품)의 생면을 받아 사용했다. 이런 계열의 가내수공업 형태의 국수공장으로 북구 조야동 남문국수가 있는데 이 공장은 동구 신암동의 국수명가 중 한 곳인 태양칼국수에 전량 납품한다.

금와의 면발은 중면보다 조금 더 굵다. 칼로 썬 칼국수에 비하면 몸집이 훨씬 약하다. 얼추 3㎜도 안 될 것 같다. 매일 중간 크기의 건멸치를 똥도 빼지 않고 사용해 멸치다시를 만들어 낸다.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손님이 오면 다싯물을 끓이고 이때 청방배추와 면발을 넣고 15분 가량 푹 끓인다. 김가루, 고깃가루, 애호박 등도 누른국수 특유의 매끈한 맛을 방해한다 싶어 넣지 않는다. 그냥 국수, 멸치다시, 그리고 청방배추, 그게 전부다. 물론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적당량 올린다. 옹기에서 갓 퍼낸 날된장, 적당한 매운 기운을 가진 퉁퉁하면서도 갸름한 풋고추. 그리고 겉절이배추김치. 너무나 간단하고 너무나 단순해 언떳 잔치국수와 칼국수가 결합된 스타일로 보인다. 목넘김을 방해하는 식재료를 넣지 않았다. 그래서 채택된 채소가 청방배추와 같은 얼갈이채소류였다. 시금치 같은 것도 좋을 것 같지만 뿌리에서 단맛이 많이 스며 나와 육수 맛을 달착지근하게 만든다 싶어 사용하지 않는다. 70년대만 해도 누른국수 다싯물은 해장국의 연장이었다.

◆할매표국수집

이제 누른국수는 사면초가다. 워낙 퓨전 국수가 강세인 탓이다. 그래도 대구 국수의 맛을 지켜주었던 할매를 기억하자. 달성군 동곡할매(강신조), 중구 경주할매(황금연), 중구 계산동 금와할매(김덕분), 명덕네거리 할매집(송주연), 칠성시장 내 보문칼국수(김노미), 칠성할매콩국수(이차연), 그리고 중앙상가 내 상주전통칼국수, 향교 근처 귀로식당 등이다. 그리고 서문시장에서 북구로 이전한 '왕근이', 가창 삼산리 '가창우리밀칼국수' 등도 기억하자.

다사읍과 하빈면의 경계에 있는 동곡리. 그곳 네거리 오른쪽에 동곡시장이 빤히 보인다.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 127 동곡 재래시장. 우회전하면 바로 오른쪽에 동곡은 물론, 전국에서도 랭킹에 드는 유명한 국수집이 보인다. 바로 96년 작고한 동곡할매손칼국수의 전설로 불리는 강신조 할매가 74세로 삶을 마감한 곳. 1970년 문을 연 이 국수집 특수 때문에 동곡시장은 '칼국수 시장'으로 변모했다. 이 집은 대구식 누른국수와 안동건진국수 절충식이랄 수 있다. 대구식은 멸치육수를 베이스로 면발을 삶아 넣는데 여기는 멸치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면수를 사용하고 얼갈이배추 대신에 호박채, 그리고 김가루를 넉넉하게 올려준다.

wind3099@hanmail.net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