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정치적 행동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돌프 히틀러의 맥주홀 폭동에 대한 법원의 온정적 판결이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맥주홀 폭동으로 바이에른주 정부를 전복하려 한 혐의(반역죄)로 기소됐다. 재판은 자신을 '독일의 구원자'로 각인시키려는 히틀러의 선전장이었다. 재판장 게오르크 나인하르트가 판을 깔아 줬다. 히틀러에 공감하는 독일 민족주의자로, 히틀러가 4시간에 걸쳐 자신의 반역죄를 합리화하는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도록 했다. 선고도 반역죄 처벌을 위한 공화국수호법의 최저 형량(징역 5년)에 그쳤다. 그것도 몇 달 후에는 형 집행을 유예한다는 단서까지 붙여 히틀러가 8개월 남짓 복역하고 풀려나도록 했다.
히틀러가 1922년 정치적 라이벌인 오토 발러슈테터의 연설을 방해하며 동조자와 함께 폭력을 휘두른 혐의(난동죄)로 기소돼 징역 3개월을 선고받고 1개월 복역한 뒤 보호관찰 4년 처분을 받은 사실도 무시됐다. 정상적 판결이라면 당연히 가중처벌해야 했다. 그 재판의 판사도 나인하르트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나인하르트가 독일 내에서 반역죄를 저지른 외국인은 추방토록 한 공화국수호법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히틀러같이 독일인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히틀러의 국적(國籍)은 오스트리아였다.
이런 사실(史實)을 꺼낸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이 우리의 어떤 '미래 역사'를 그려 갈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법원이 히틀러를 봐 주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적 질문은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히틀러 재판은 '제3제국' 출현으로 이어져 법치의 파괴, 도덕과 윤리의 총체적 타락을 길을 열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은? 법치가 만개하고 상식이 존중받게 될까, 아니면 정치 이념에 오염된 '법 기술자'들이 판을 치는 법치의 파탄을 초래할까.
탄핵 재판은 돌이켜 볼수록 가슴 쓰리지만 그래도 돌아봐야 한다. 파면 결정이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인지 진영 논리와 편향된 이념의 결과물에 법률의 외피(外皮)를 씌운 사기극이었는지 말이다. 그런 의심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겠다는 야당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탄핵심판을 강행한 것이다. 내란죄는 결정적인 탄핵소추 사유였다. 이를 빼면 각하(却下)해야 했다. 탄핵 재판은 형사소송절차를 준용(遵用)해야 하고 형사소송에서 공소장(탄핵 재판에서는 탄핵소추안) 변경은 기본적인 공소사실이 동일한 경우에만 가능한 '공소사실 동일성' 원칙이라는 법리(法理)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내란죄로 탄핵소추했는데 내란죄를 빼는 것은 대국민 사기다. 그게 상식 아닌가?
이런 문제 제기에 헌재는 말장난으로 빠져나갔다. "내란죄가 없다면 탄핵안이 통과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객관적 근거가 없는 가정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배척했다. 헌재의 논리 역시 객관적 근거 없는 가정적 주장이긴 마찬가지다. 내란죄 없는 탄핵안을 표결하지도 않았는데 통과됐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말장난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1심 판사의 '위증은 있었지만 교사(敎唆)는 없었다'는 무죄 판결이나 공직선거법 2심 판사의 '백현동 용도 상향은 국토부의 협박 때문'이라는 이 대표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의견 표명'으로 무죄라는 판결과 한데 묶을 수 있는 자의적·독단적 판단이다. '대통령을 파면해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익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이익인가?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어느 법 어디에 그런 기준이 있나?
헌재 결정은 계엄령 선포를 유도한 민주당의 '입법 폭주' '탄핵 폭주' '행정부 마비' 기도(企圖)에 분노했던 중간적 입장의 국민들에게도 정당한 판결인가라는 의심을 품게 했을 것이다. 그 의심은 '이런 사법부하에서 우리의 법치는 제대로 기능할 것인가'라는 의심으로 확대되면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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