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주머니 앞으로 쏠리더니 기체 180도로 뒤집혀져"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

대구 서변동 인근 주민들 사고현장 주변 찾아…조종사 구하려 했지만 실패

6일 오후 3시 41분쯤 대구 북구 서변동에서 산불 진화에 나선 동구청 임차 헬기가 추락했다. 추락한 임차 헬기의 잔해가 남겨져 있는 모습. 김유진 기자
6일 오후 3시 41분쯤 대구 북구 서변동에서 산불 진화에 나선 동구청 임차 헬기가 추락했다. 추락한 임차 헬기의 잔해가 남겨져 있는 모습. 김유진 기자

6일 오후 4시쯤 찾은 대구 북구 서변동 헬기 추락사고 현장. 굴다리와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가는 길은 소방차, 경찰차, 구조 장비 차량들로 붐볐다. 헬기가 떨어진 밭 주변에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둘러져 있었고,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통제선 안쪽, 검게 타버린 헬기 잔해가 비닐하우스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다. 기체는 심하게 파손된 상태로 불에 그을린 채 흩어져 있었고, 반쯤 부러진 헬기 꼬리만이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 있었다. 헬기가 추락하며 충돌한 비닐하우스의 천막 일부는 불에 타 뒤틀린 상태였다. 농막은 초록색 상단 천이 찢어져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채였다.

예고 없이 벌어진 참사에 인근 주민들은 밭일을 멈추고 한참을 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일부는 통제선 밖에서 소방 관계자에게 사고 경위를 묻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김영호(70) 씨는 사고 직전까지 근처 밭에서 작업 중이었다. 김 씨는 헬기가 밭 위를 저공 비행하다가 공중에 멈춘 뒤, 이내 중심을 잃고 추락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김 씨는 "헬기가 공중에 멈추면서 기체에 매달린 물주머니가 관성에 의해 급격히 앞으로 쏠렸다. 이후 추락 과정에서 헬기 기체 일부가 비닐하우스에 부딪혀 기체가 뒤집혔다"며 "추락 직후 폭발음과 함께 기체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변에 있던 또 다른 농민과 함께 조종사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기체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조종사는 기체 아래에 깔려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기체 주변의 온도는 화재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진 상황이었다.

그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이날 북구 서변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투입된 헬기 5대 중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헬기였다.

추락 헬기가 떨어진 밭의 주인인 사태수(72) 씨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현장을 급히 찾았다. 하지만 통제선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고, 그는 사고 현장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 씨는 "지인들이 '밭 주변에 산불이 났다'더니, 또 몇 분 뒤엔 '밭에 헬기가 추락했다'고 알려왔다.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산불이 계속 발생하고, 비슷한 헬기 사고도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망가진 밭은 고치면 되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 쉬었다.

사고 지점에서 약 800m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박주원(16) 군은 추락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박 씨는 "헬기가 비닐하우스에 걸렸는지 주춤하더니 180도로 기울어져서 추락했고, 떨어지자마자 연기가 자욱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 30분쯤 천으로 현장을 가린 후 조종사의 시신을 수습했다.

대구 북구 관계자는 "헬기가 인근 저수지에서 담수한 이후 선회하기 위해서 추락 장소인 비닐하우스 부근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