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속이 터져요. 나무 하나라도 더 심어야죠."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농민이 불탄 삶터를 뒤로하고 경산의 한 묘목농장을 찾았다. 이번 산불로 집이 전소되고 과수원도 모두 잃은 그는 전기가 끊긴 마을회관에서 임시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절박한 표정으로 묘목을 고르며 남긴 말엔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사연을 전한 이는 경북 경산에서 묘목 농장을 운영하는 청년농부 이광열(38) 씨다.
이 씨는 "그분은 묘목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래도 심어야죠'라고 말씀하셨다"며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심정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산은 경북 묘목 시장의 중심축이다. 특히 유실수인 사과묘목을 공급하는 거점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청송, 안동, 의성, 영양 등 경북 북동부 지역 과수 농가들이 대규모 피해를 입으면서 경산의 묘목 수급에도 불안이 감돌고 있다.
이 씨는 최근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산불 발생 일주일 전, 묘목을 사간 고객이었다.
그는 "안동시 길안면에서 사과 과원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사장님, 과원이 다 탔어요. 혹시 부사묘목 남은 거 없나요'라고 하셨다"며 너무 절박하셨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죄송했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이미 후지 계통의 사과묘목은 조기에 동이 났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내년에도 품귀현상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출하량 감소에 따른 사과 가격 상승은 묘목 값까지 영향을 줄 곳으로 전망된다.
이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이유로 수익이 늘어나는 건 전혀 반갑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이 씨는 "지금 제가 산불 피해 농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합격묘를 생산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며 "묘목농가는 과수농가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과수농가가 무너지면 결국 과수시장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불의 흔적은 단순한 재해를 넘어 경북 농업 전반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경산처럼 피해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그 여파가 퍼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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