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대구 주택시장에 재건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구의 아파트 공급량 감소가 현실화하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재건축 관련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에 힘입어 '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가 재건축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구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받는 재건축 조합을 이끄는 두 조합장은 재건축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운영과 조합원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조합은 각각 수성구와 달서구를 대표하는 재건축 조합으로 하나는 재건축을 완료하고 입주를 마쳤고 나머지는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을 마치고 지난해 연말쯤 착공에 들어갔다. 두 사람과 함께 향후 대구 부동산 시장과 재건축 사업을 조망하고 주의점을 짚었다.
-조합장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송현주공3단지재건축정비사업조합(상인센트럴자이) 조규판 조합장=조합원 이주와 철거가 완료된 후에 시공사가 착공에 나서지 않아 가장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가 사업을 포기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불안 심리가 높았다. 그래도 착공을 해야만 한다는 조합원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지난해 9월 공사비 변경안이 총회를 통과했다. 현재는 조합원 계약률이 98.7%에 이르고 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범어우방1차아파트재건축정비사업(범어아이파크1차) 박선용 조합장=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조합 업무를 시작했다. 이웃 아파트를 본보기 삼아 정비업체도 없이 사무장과 둘이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컴퓨터 앞에서 일만 했다. 2019년 조합을 맡아서 2020년 6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그해 12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한 해에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를 6개월 만에 받는 것은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공기 지연, 공사비 인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박=당초 계약서에 합의한 공사비가 있었고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도 있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시공사는 막무가내로 인상만 요구했다. 심지어 공사를 중지시키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공사를 진행하려면 돈을 가진 조합이 풀 수밖에 없다. 마감자재 특화와 당초 계약에 없었던 주차장 확장, 세대 창고 등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공사비를 증액했고 공사비 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도 받았다.
▶조=가장 중점을 둔 요소는 조합원 분담금 증가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합은 철거를 완료하고 1년 이상 시간이 지연된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착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시공사와 1년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착공을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협상에 임했다.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조합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재건축 사업은 조합과 시공사가 함께 협의해야만 하는 거대한 사업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이익이나 손해만을 주장해선 곤란하다. 조합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협상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잘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조합장이 가장 많이 알아야 하고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박=명분이 필요하다. 증액의 폭이 아파트 품질을 올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증액의 폭도 막무가내가 아니라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시공사와 협상할 때 이사, 대의원, 건설 전문가 조합원을 참여시켜 상황을 알리고 동의를 구했다. 시공사는 이윤 추구가 목적이고 조합은 적은 비용으로 명품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공사비를 두고 다툴 수밖에 없다. 당사자끼리는 해결이 어려우니 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재건축 사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조합원 간 이견, 반대파, 재정 문제 등은 어떻게 조정했나
▶박=조합원들에게 숨기거나 비밀이 없어야 한다. 모든 내용은 SNS에 미리 올려서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시켜서 동의를 얻었다. 필요할 때마다 조합원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휴일이나 야간에도 늘 소통했다. 분기별로 15~20쪽 분량의 소식지를 발간했다. 조합원의 인적 네트워크도 최대한 활용했다. 건축 전문가 그룹, 마감재 선정 위원회, 공사비 협상단, 블로그 운영단 등이 대표적이다.
▶조=현실적으로 조합원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순 없다. 우리 조합은 조합원이 많고 외지인 비율이 높아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가진 분도 당연히 존재하므로 관련 법과 정관 등에서 정한 바에 따라 원칙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만이 문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최근 정부가 여러 재건축 규제를 풀며 향후 재건축 관련 정책의 변화가 예상된다.
▶조=최근 재건축 관련 규제는 완화되는 추세지만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 등 환경규제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이런 규제들이 강화되면 공사비가 올라가 결과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업성이 높은 서울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대구는 공사비가 올라가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 지역 실정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
▶박=우선 상가, 오피스텔 등 비주거시설 비율을 없애야 한다. 어느 단지든 상가와 오피스텔 미분양이 많다.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시설들이 악성 미분양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도 폐지되어야 한다. 2023년 일부 완화됐지만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다른 재건축을 추진 중인 조합장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박=재건축의 모든 것을 입안하는 것은 조합장이지만 이사회, 대의원회, 총회를 거쳐야 의결이 된다. 아무리 좋은 안을 입안하더라도 관철이 안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사회, 대의원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조합장은 자신감과 강심장도 지녀야 한다. 이사회, 대의원회의 의결을 받고 조합원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추진하는 것은 조합장이다. 늘 불안하다고 외롭겠지만 옳다는 생각은 밀어붙이고 관철시켜야 한다.
▶조=재건축이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말은 옛말이 됐다. 사업성이 낮은 조합이 재건축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 현재 대구 부동산 시장이 많이 침체됐다. 회복 시기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직 이주를 시작하지 않은 조합이라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이주를 시작한 조합은 빨리 사업을 진행하는 것만이 조합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사업 규모가 적은 조합은 주변 단지와 연합해서 체급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의 재건축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조=관할 지자체 담당 부서와 소통이 중요하다. 담당 공무원과의 소통을 통해 사업 진행 방향에 대한 조언도 얻고 의견을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허가 시점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소통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말단 공무원이라고 해서 절대로 무시해선 안된다. 항상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박=시공사는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오너의 경영철학이 더 중요하다. 오너가 조합을 돈이 아니라 소중한 고객이자 동등한 관계로 보는지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잘 두진 않지만 건설사업관리(CM)의 도움도 필요하다. CM은 현장소장이나 감리 출신 등 기술자 위주로 구성된다. 제대로 된 CM을 두면 재건축 사업 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이 재건축을 준비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나 주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재건축 비용의 대부분은 건설사의 공사비이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재건축이 끝난 후 얼마를 돌려받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재건축 예산을 딱 맞게 사용하거나 조금 모자라서 추가 부담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돌려받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분담금을 더 많이 받았다는 뜻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된다.
▶조=급격한 인구 감소와 젊은 세대의 이탈로 향후 주택 수요가 지속될지 판단하기 어렵다. 앞으로 당분간은 재건축 시장의 냉각기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재건축 사업의 주체는 결국 조합이고 조합원이다.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발생하게 되므로 한번 시작하게 되면 되돌리가 어렵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터뷰 나선 두 조합장은?

범어우방1차아파트재건축정비사업(범어아이파크1차) 박선용 조합장은 2019년 전 조합장이 총회에서 해임되면서 조합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범어우방1차아파트재건축정비사업은 418가구 규모로 2016년 12월 조합이 설립됐고 지난해 10월 입주를 마쳤다. 현재 입주율은 90%에 이른다.

송현주공3단지재건축정비사업조합(상인센트럴자이) 조규판 조합장도 2018년 조합 내부 문제로 당시 조합장이 사퇴하고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되면서 조합장 선거에 나서게 됐다. 송현주공3단지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1천498가구 규모로 2017년 8월 조합이 설립됐고 지난해 12월 착공이 이뤄졌다. 현재 공정률은 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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