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李 소환 포기, 존재 이유 스스로 부정한 법원의 자모(自侮)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조형우)는 7일 대장동 일당의 배임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또 나오지 않자, "더 이상 이 대표를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24일, 28일, 31일에 이어 이날 다섯 번째 법원의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이런 식이라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者)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의 형사재판은 사실상 무력화(無力化)될 수밖에 없다.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증인이 과태료 부과 후에도 소환에 불응하면 강제구인(拘引) 또는 7일 이내 감치(監置) 등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미 법원은 이 대표에게 과태료 300만원과 500만원을 부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더 이상 이 대표를 소환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반 국민들과 다른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법원의 변명(辨明)은 구차한 수준으로 들린다. 재판부는 "현직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不逮捕特權)이 있어 국회 동의 없이는 소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태료 결정에 이의 신청해 과태료가 확정되지 않아 감치 절차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형사재판 증인들도 과태료 처분에 이의 신청하면 증인 소환을 그만둘 것인지 되묻고 싶다. 불체포특권에 따른 국회 동의는 국회가 자체적으로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법원이 미리 결과를 예단해 법치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직무 유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고의적 재판 지연 의혹과 사법부를 무시(無視)하는 듯한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법원이 지난달 31일 이 대표에게 선거법 사건 관련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을 보냈으나 일주일째 수령하지 않았다. 이날 대법원은 서울남부지법·인천지법 집행관에게 소송서류를 이 대표에게 직접 송달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의 사법 정의(司法正義)는 어쩐지 이 대표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그건 정의가 아니라 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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