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도시는 언제나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영화와 도시의 관계성을 강의하고 책도 냈으며 틈나는 대로 도시이야기를 읽었으나, 예측 가능한 내용 이상의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작가이자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실력 있는 건축가 오영욱을 알게 되었다.
그의 저서 중 '변덕주의자들의 도시'를 가장 먼저 만났다.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좋았다. 특히 상상의 시선을 공중으로 띄워 그렸다는 (초대형으로 출력해 걸어놓고 싶은) 부석사 일러스트에 넋을 빼앗겼다. 그의 후속작을 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는 건축을 경유해 거대도시 서울과 구성원의 욕망을 살피는 이야기다.
건축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건축가. 오영욱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21세기 한국사회 주류의 목소리와 유사한 듯 다르다. 예컨대 조국근대화로 인해 잃은 것 중 하나는 '오래된 것을 대하는 자세'라고 말하면서, 낡은 것을 천시하고 100년 정도의 건축물은(특히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고민 없이 헐어버리는 행태를 비판한다. "좁고 불편해도 낡은 기차역을 사용하거나 오래됐지만 깔끔한 관공서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한국인이 유럽에 가서 그런 사람들의 삶을 관광한다."고 말이다. 때문인지 책에는 변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 있고 '변화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를 좋아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빼곡하게 담겼다.
흥미로운 대목은 왜 도시에는 나무가 끊임없이 심겨야 하는지, 도심의 인도 폭을 줄여가면서까지 강박적으로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꼭지다. 즉 나무를 많이 심을수록 좋다고 인식된 녹지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를테면 공원 숫자가 적을 뿐, 국토의 70%가 산이라서 국가 전체의 녹지비율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가가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축주에 의해 만들어진다."(210쪽)면서 압축성장 시절의 우리사회와 권력층은 좋은 건축주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2011년 법 개정이 되었지만, 이전까지 1만 제곱미터 이상 규모의 건물에 반드시 공사비 1% 이하를 할애해 미술 장식을 설치해야 했던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대부분의 예술품이 '장식'에 그친 현실과 "솔직히 도시의 건물들 1층 어딘가에(아마도 흡연 장소 옆일 가능성이 높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장식'해놓은 예술품들 상당수가 아깝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50년만 더 매달려 있으면 학동사거리라는 이름이 킹콩사거리(나 역시 도산대로를 다닐 때마다 키네마극장에 매달린 킹콩을 눈여겨보곤 했다.)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오영욱의 말대로 정말 그렇게 변하면 좋겠다.

교통사고가 빈번한 도로에 건널목을 만들어야한다거나, 표지판을 세우거나 신호체계를 바꾸자는 식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은 아무나 말 할 수 없는 담론을 상정해 가장 내밀하고 아픈 지점을 도려낼 수 있는 사람. 공동체가 추구해온 절대적 가치에 대항하여 거침없이 흠집 낼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릇 "도시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욕망에 의해 발현하고 진화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은 곧 공동체의 욕망이 빚어낸 것"이라고, 유머와 통찰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달콤 쌉싸름한 러브레터. 내가 건축가 오영욱의 글을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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