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침팬지로 변신한 英 '국민 가수' 로비 윌리엄스

영화 '베러맨' 무대 밖 자기혐오·우울 담아…'위대한 쇼맨' 마이클 그레이시 연출

영화
영화 '베러맨' 속 한 장면. CJ CGV 제공

1990년대 초반 보이그룹 테이크 댓의 멤버로 활약한 로비 윌리엄스(51)는 1996년 솔로 데뷔 이후 영국의 '국민 가수'로 거듭났다.

누적 앨범 판매량은 8천500만장을 넘겼고 2006년 월드투어에서는 하루 만에 160만장의 티켓을 팔았다. 영국의 그래미상이라 불리는 브릿 어워즈에선 총 18번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무대 뒤 그의 삶은 벼랑 끝으로 치달았다. 테이크 댓 활동 당시부터 문제가 된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은 홀로서기 이후에도 꾸준히 그를 괴롭혔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윌리엄스는 항상 자신이 남들보다 "덜 진화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9일 개봉하는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뮤지컬 영화 '베러맨'(Better Man)에는 이런 윌리엄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기 영화인 이 작품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로서의 윌리엄스보다는 우울, 자기혐오, 불안,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윌리엄스에 초점을 맞췄다. 커리어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윌리엄스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그는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독특한 점은 윌리엄스 캐릭터가 인간 배우가 아닌 침팬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배우 존노 데이비스의 연기를 모션 캡처(몸에 센서를 부착해 움직임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기술)한 뒤 그 위에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침팬지의 외형을 덮었다. 목소리 연기는 윌리엄스가 직접 맡았다.

이 같은 설정은 영화 제작 전 그레이시 감독이 "당신이 동물이라면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윌리엄스가 "나는 무대에서 원숭이처럼 춤을 췄다. 내 인생은 안전벨트 없이 줄타기하는 것과 같았다"고 답한 데서 비롯됐다.

침팬지가 노래와 춤으로 인간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광경은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윌리엄스의 굴곡진 인생을 보여주는 데 침팬지보다 더 효과적인 메타포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친구들에게서 따돌림당하던 8살 윌리엄스가 아버지에게서 노래를 배워 가수의 꿈을 키우고 마침내 테이크 댓 멤버로 발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술과 약물 문제로 쫓기듯 팀을 나가고, 솔로로 데뷔하기까지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에인절스'(Angels), '렛 미 엔터테인 유'(Let Me Entertain You) 등 히트곡을 연이어 내면서 도약하지만, 내면에는 공허함이 늘 자리 잡고 있다. 껄끄럽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더 악화하고 가장 사랑하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윌리엄스의 정신은 더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영화는 윌리엄스가 자기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친다. 아버지와 함께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마이 웨이'(My Way)를 부르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부자는 이를 계기로 화해하게 되고 윌리엄스는 영화 제목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한 발 더 다가선다.

휴 잭맨 주연의 '위대한 쇼맨'을 연출한 그레이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뮤지컬 신을 만들어낸다.

특히 재결합한 테이크 댓 멤버들이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록 DJ'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피아노와 이층 버스 위를 무대처럼 누비는 멤버들과 밤거리를 가득 메운 500명의 군무가 어우러졌다.

이 밖에도 '필'(Feel), '아이 파운드 헤븐'(I Found Heaven), '리라이트 마이 파이어'(Relight My Fire) 등 13곡이 영화에 삽입됐다. 윌리엄스가 영화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포비든 로드'(Forbidden Road)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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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러맨' 속 한 장면. CJ CG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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