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신동우] 북극항로를 열어라

신동우 경북부 기자

신동우 경북부 기자
신동우 경북부 기자

1910년대. 미국은 자신의 땅도 아닌 남아메리카 대륙에 3억5천만달러를 들여 대공사를 단행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를 뚝 잘라 새로운 물길을 냈던 파나마 운하 공사는 지금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업으로 거론된다.

사실 파나마 운하를 처음 시작한 곳은 미국이 아닌 프랑스이다.

1881년. 지금으로서도 천문학적 액수인 4억5천만프랑(현재 한화 약 8천억원)을 들여 시작된 공사는 그러나 전염병과 기술 부족, 자금 고갈 등으로 인해 1889년 중단되고 만다.

남북으로 기다란 아메리카 대륙은 선박 물류에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다.

파나마 운하 이전 시기 아메리카 대륙 동서의 물자를 선박으로 이동시키려면 대륙 남단 끝, 드레이크 해협을 거치는 길이 유일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크를 기준으로 무려 2만2천500㎞에 달하는 길이다.

반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경우 절반도 안 되는 9천500㎞에 두 곳을 주파할 수 있다.

길이도 길이지만, 당시의 운항 및 선박 기술력으로는 오히려 사고의 위험성이 더 높았다.

모든 물류의 기술 다양성이 높아진 지금도 선박은 세계 유통경제를 이끄는 핵심이다.

21세기의 파나마 운하는 단연 북극항로를 꼽을 수 있다.

현재 지구를 동-서로 이동하는 선박 물류는 부산항을 기준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2만2천㎞(수에즈 운하 이용), 뉴욕까지 1만8천㎞(파나마 운하 이용)가 걸린다.

북극항로로 대체할 경우 로테르담은 7천㎞(10일), 뉴욕은 5천㎞(6일)를 단축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길 연료 절감, 물류 편의 등 경제 유발 효과는 결단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 단언한다.

북극항로 개발에서 경북 포항은 꽤 중요도가 높다.

2009년 지어진 포항 영일만항이 바로 이 북극항로를 염두에 두고 건설된 거점항이기 때문이다.

개발 초기부터 북극항로의 일부분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환동해 경제권 형성이 주목적이었다.

물론, 포항이 북극항로의 중심에 서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떨어지는 인프라와 얕은 수심, 통관 서비스 부족 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나마 희소식은 동해 심해 가스전 등 경북 동해안을 둘러싼 호재들이 많다는 점이다.

동해 심해 가스전 보조 항만 역할을 따내면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됐던 수심 개선 및 항만 인프라 개발 등은 차츰 진행될 전망이다.

포항시도 부산항과의 단순 경쟁보다는 해양 연구·선박 제조 기술·인재 개발 등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북극의 단단한 얼음을 깨부술 선박 소재 개발과 미지의 해양을 탐험할 연구 인프라, 다양한 해양 인재들을 육성할 수 있는 특성화 항만 지역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이다.

포스코와 포스텍, 수소·2차전지 특화단지가 있는 포항이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북극항로를 두고 국내 항만도시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부산은 물론, 전남 여수와 제주 등 국내 모든 항만도시들이 '북극항로를 선점하겠다'면서 벌써부터 난립 중이다.

아쉽게도 한국은 북극항로에 있어 후발 주자이다. 쇄빙선 개발과 관련 연구 등을 따져 봤을 때 러시아·미국·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한국의 경쟁자는 바로 이들 나라이다. 각 도시들이 협심해 서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우리끼리의 자중지란을 경계하며 말 그대로 '한국이 북극항로를 마음껏 누비는' 그런 시대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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