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산에 내려와서야 그동안 국토 균형발전을 입으로만 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윤상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달 27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위치한 가덕도신공항 현장지원센터(옛 천가초등학교 대항분교)에서 그를 만났다. 이 이사장은 국토교통부에서 도로·철도·항공 등 교통 분야 전반에 걸쳐 오랜 기간 몸담아 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그는 과거 과천청사에서 세종청사로 옮겨 가며 수도권 중심 사고를 많이 덜어냈다고 믿었단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공단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돼 부산에 살면서 지역 경제가 너무 낙후(落後)됐다는 것을 절감했단다. 그리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마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모습을 목도(目睹)하며 우울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선 이구동성으로 '87년 체제'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지금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자치단체 입법·행정, 세입·세출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속해 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저출생·고령화, 의료 격차, 청년 일자리 감소 등 국가적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균형발전의 부재로 결국 지방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마저 떠안고 있다. 이제 지방분권형 개헌은 선택이 아닌 국가 생존의 과제다.
하지만 유력 대권주자 앞에서 지방의 절박함은 또다시 외면당하고 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밝혔다. 아울러 지방분권 개헌은 "논쟁만 불러올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전날 '대선·개헌 동시 투표'를 제안한 우원식 국회의장마저 사흘 만에 이를 철회했다. 기시감을 느낀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도 개헌 담론이 부상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당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조기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주인공도, 논리도 똑같다. 당시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은 "적폐(積弊) 세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무슨 개헌이냐"며 일축했다.
아둔한 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와 개헌 논의는 왜 동시에 진행될 수 없는가. 이 두 사안은 본질적으로 양자택일(兩者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사회는 개헌을 논의하고, 사법기관은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면 될 일이다. "대선을 먼저 치르고 개헌은 그 이후에"라는 말은 사실상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이미 지난 시간이 입증한 일이다. 대선과 개헌 논의가 병행하지 않으면, 대선 이후 개헌 동력은 사라진다. 꼭 대선 당일 국민투표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대선과 함께 개헌이라는 의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를 외면한 채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한다면, 정권을 획득한들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가 제자리로 돌아가겠는가. 이 전 대표는 2022년 자신이 한 말을 복기해 보길 바란다.
"지방자치권은 거주 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처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 지방정부의 자율권이 헌법에 명시되면, 위헌 판단을 통해 중앙정부가 자치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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