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아직 여전한 산불의 상흔…" 주민 심신 치료하는 현장 진료소

이달 한달 의성군에서 10개 의료단체 현장진료소 운영
심리적 충격 받은 주민들도 찾아내 심리 치료 병행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그날 불길이 일고 연기가 하늘을 뒤덮던 광경이 자꾸 생각나요. 꿈을 꾸면 그 때 당시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쩌죠?"

주민 A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산불도 모두 꺼졌고, 큰 탈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그 날의 기억은 마음이 진정될수록 생생하게 살아났다.

뜨거웠던 열기가 새삼 느껴지는 듯 했고, 멀리 산 저편에서 불길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다. 한밤 중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A 씨는 "이런 충격이 잊히지 않고 계속될까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파견된 상담심리전문가 김보람 교수는 "재난에 따른 심리적 충격은 주변 사람들을 만나 당시 상황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자꾸 털어놔야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초대형 산불은 검게 그을린 흔적만 남았지만 주민들이 입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불덩이가 날아들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고, 그날 들이마신 재와 연기는 여간한 기침으로도 뱉아내기 어렵다.

꾹 눌러 참고 견디는 고령의 이재민과 주민들에게 의료기관·단체의 현장 진료는 '가뭄 속 단비'와 같다.

노인이 대부분인 농촌 마을은 대부분 병·의원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아직 대피소를 벗어나지 못한 이재민은 아직 의료기관을 찾을 여력이 없어서다.

10일 오전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는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주민들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진료실로 들어선 주민들은 간단한 문진부터 시작했다.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기침이 계속 나서 살 수가 없어요. 머리도 아프고요." 문진을 마친 주민은 골다공증 검사 기계에 오른발을 올려 검사를 마치고 다시 전문의의 내과 진료를 받았다. "X-선을 찍어 보시겠어요? 검사 결과를 보고 다시 진료를 볼게요."

진료실을 찾는 주민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이날 오전에 이 곳을 찾은 주민들은 42명. 오전 진료 예약만 1시간 만에 끝났다.

지난달 27일 화재 피해를 입은 이재민 서정호(70) 씨도 산불을 겪은 후 이날 처음 진료를 받았다. 서 씨는 이번 산불로 거주하던 집이 모두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서 씨는 "불을 끄느라 연기를 마셔서 기침을 달고 살았는데 오늘 X-선 검사도 받고 제대로 진료를 받았다"고 웃었다.

점곡면 송내1리에 사는 김귀선(78) 씨도 이날 X-선을 찍고 진료를 받았다. 김 씨는 "새벽까지 집 주변과 지붕에 물을 뿌리고 불길을 막은 뒤로 기침이 계속 난다"면서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김승호 김천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은 "기침, 가래 등 주로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면서 "심리적 충격과 함께 기존에 갖고 있던 질환들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달 1일부터 김천의료원과 경북대병원, 경북도의사회, 경주 동국대병원 등 대구경북 7개 의료기관·단체들은 48개 마을에 주민 등 655명을 진료했다.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10일 의성군 점곡면 점곡보건지소에 마련된 현장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과 이재민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이달 말까지 영남대의료원과 안동성소병원, 대구의료원 등도 단촌·옥산·점곡·안평·신평·안사면 등 6개면 100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국가 트라우마센터 등은 진료 과정에서 심리적 충격을 받은 주민들을 찾아내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자신이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 진료 문진 과정에서 심리적 충격이 심한 43명을 찾아내 심리 상담과 연계했다.

이선희 의성군보건소장은 "정신적 외상 고위험군은 3개월간 방문 또는 전화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고위험 증상이 지속될 경우 전문의료기관을 통해 1대 1 전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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