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수수 튀김 할아버지는 칠성동 골목 집 처마 밑에 도사리고 앉아 종일토록 기계를 덜덜 돌린다. 동네 꼬마들은 이 할아버지가 한없이 부럽다.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듯 옥수수는 길다란 철사망 안에 쏟아진다. 팡~~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날 때면 금방 구수한 냄새가 넘쳐 흐른다. 그것이 먹고 싶다…."
1955년 5월 3일 자 매일신문은 이런 설명과 함께 귀를 막고 잔뜩 찡그린 어린이 사진을 큼직하게 실었습니다. 매일신문사가 주최한 제1회 어린이 사진전 최고상(특선 1석) 작품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여전했던 저 무렵, 먹고 사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아이들은 건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뻥튀기 장수를 맴돌며 침을 삼켰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미래는 맑디 맑은 저 어린 아이들. 어린이 사진전은 그 희망을 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베이비 붐이 막 일던 1956년. 시골은 아이 천지였습니다. 해질녘이면 가시 울타리에 우르르 날아든 참새 마냥, 골목은 재잘대는 아이들로 시끌 했습니다. 맨 땅에 작대기로 줄만 그어도 참한 놀이터. 용 쓰는 아이도 지켜보는 친구도 힘겨루기 놀이에 해가 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전쟁은 끝났어도 대구에는 눌러 앉은 피란민이 많았습니다. 고향은 무슨, 고아원마다 부모 잃은 아이가 부지기수였습니다. 1959년, 고아들이 죽 그릇을 앞에 두고 오늘도 기도 해 보지만 보고 싶은 울 엄마는 돌아 오질 않았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되던 1961년 무렵, 식구는 점점 늘어 집집마다 아이들이 네댓 명씩. 사랑방 할머니까지 예닐곱은 다반사였습니다. 밥상은 늘 부족해 꽁보리밥도 투정 부릴 새가 없이 동이 났습니다. 코흘리개 막내는 누나들이 업어서 키웠습니다.
가난을 벗자면 배워야 한다고, 시골에서도 학업은 제일 큰 농사. 무작정 학교 가기 싫다는 자식의 속내를 알아차린 어머니는 콩을 내고 계란을 팔아 육성회비를 마련했습니다. 형편이 빤 하니 누나는 진학 대신 공장엘 갔습니다. 1965년, 이웃집 손녀딸이 또박또박 읽어주는 편지 한 장. 군대 간 아들은 집안 걱정 뿐이었습니다.
긴 머리 소녀들은 고무줄 하나로 놀았습니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1969년, 노래를 부르며 어깨까지 올라간 고무줄을 춤을 추듯 다리로 휘감던 저 소녀들. 고무줄을 싹둑 끊고 휙 달아나던 뭇 사내들. 지금쯤 이들은 또 무슨 재미로 지낼까요?
1970년대, 멱감던 시냇가엔 어디든 고기들이 떼를 지었습니다. 아이들은 꾀를 내 흙탕물을 일으키며 후렸습니다. 깡통 가득한 물고기를 똑 같이 가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그때 개구쟁이들은 이렇게 컸습니다. 꽃은 져도 아이들은 늘 웃음꽃이었습니다. 저리도 해맑았습니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산업 역군으로, 과학자로, 기업가로, 또 누구는 노벨 문학상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궜습니다.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정치적 암흑기엔 '쓰레기통'에서도 보란듯이 '장미꽃'을 피워냈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오늘의 우리는 모두 저 개구쟁이들 덕분이었습니다.
땅거미가 져도 다시 아침을 밝히는 태양처럼, 어린이는 또 다시 미래를 밝혀나갈 태양. 인구 소멸을 넘어 희망찬 내일을 열어 갈 태양. 어린이는 태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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