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봉 주교 선종, 14일 오전 11시 목성동성당서 장례미사

한국전쟁 이후 70년 넘게 복음·사랑의 삶 살다가 10일 하늘나라로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 21년간 교구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
사회적 약자위한 활동, 1978년 불량 씨감자(오원춘)사건 대표사례
14일 오전 11시 안동 목성동 성당서 장례미사, 장지는 농은수련원

한국 전쟁 직후 파견돼 70년 이상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음과 사랑을 실천했던 두봉 레나도 주교가 지난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매일신문 D/B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파견돼 70년 넘게 '가난한 교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던 두봉 레나도 주교가 지난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장례미사는 14일 오전 11시 천주교 안동교구 목성동 주교좌성당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경북 예천군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지다.

천주교 안동교구는 11일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 두봉 레나도 주교가 2025년 4월 10일 오후 7시 47분 선종하셨다"고 전했다.

안동교구는 "온 삶을 기쁘고 떳떳하게 사셨고,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하느님 아버지 품에 안기셨습니다. 두봉 주교님의 마지막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성사(聖事)!',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 발표했다.

두봉 주교는 지난 6일 오후 1시쯤 의성군 봉양면 '두봉 천주교회'라는 문패가 붙은 사택에서 식사 후 손님들과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안동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기다리던 신자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파리 인근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집안의 5남매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르네 뒤퐁이었다. 신학교를 마친 두봉 주교는 외국 선교활동을 결심하고, 21세에 파리외방선교회에 입회했다.

그는 1954년 12월 한국에 파견돼 대전 대흥동천주교회에서 10년간 보좌로 사목했으며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등을 지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고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취임해 약 21년간 교구를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했다. 지난 2004년부터 의성 봉양 작은 공소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지내왔다.

두봉 주교는 '가난한 교회'를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안동교구장으로 재임하던 기간 경북 영주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의원 개원,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를 창립했다.

상지여자전문학교와 상지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여성 교육에도 이바지했다.

특히, 두봉 주교는 농민의 권익 보호도 중시했다. 1978년 영양지역에서 발생한 불량씨감자 사건,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두봉 주교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손꼽힌다.

천주교 신자이며 농민회 영양군 청기 분회장이던 오원춘 씨가 정부와 영양군이 권하고 보급받았던 불량 종자 문제로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오씨가 괴한들에게 납치·폭행 당한 사건이었다.

당시 농민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안동교구 사제단이 나섰도, 진상조사를 추진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가톨릭이 대립하는 시국 사건으로 번졌고, 외무부가 두봉 주교에게 자진 출국 명령까지 내렸다.

두봉 주교는 직접 바티칸으로 건너가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고,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강한 입장을 내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봉 주교는 지역 사회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2019년 12월 대한민국 특별 국적을 취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 백남인권봉사상, 만해실천대상 등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 수필집 '사람의 일감'(문음사, 1989년)과 '가장 멋진 삶'(바오로딸, 2011년)이 있다.

한국 전쟁 직후 파견돼 70년 이상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음과 사랑을 실천했던 두봉 레나도 주교가 지난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매일신문 D/B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