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 파리와 런던, 센강과 템즈강을 따라

거대한 에펠탑 아래에서. 하태길 겸임교수
거대한 에펠탑 아래에서. 하태길 겸임교수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생명선이며, 도시의 숨결이 깃든 역사의 증인이다. 센강은 파리와, 템즈강은 런던과 이야기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센강을 거닐면 파리 특유의 낭만이 끝없이 전개된다.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물결 위로 어른거리며 예술과 역사라는 한 편의 시가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반면, 템즈강에서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마주한다. 세인트폴 대성당이 보여주는 전통과 고층 빌딩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혁신의 스카이라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힘을 보여준다. 유람선 위에서 두 도시를 바라보며 과거과 현재가 교차되는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센강에서 바라본 파리

센강은 파리의 동맥이다. 유람선이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다다르자 그 위엄에 센강이 숙연해졌다. 고요함 속에서 2019년 대성당의 상징인 첨탑을 삼켜버렸던 큰 불길이 떠올랐다. 하지만 불꽃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희망의 불씨는 세심한 복원 과정을 기다렸고 노트르담은 다시 센강의 품으로 돌아왔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는 2008년 불길에 휩싸였던 숭례문을 생각나게 했다. 비슷하게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노트르담이 프랑스인들에게 건축물이 아닌 파리의 정신이었듯, 숭례문 또한 한국인들의 그것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숭례문은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지만, 결국 시민들의 염원과 노력으로 복원되어 기억과 자부심을 되찾는 소중한 과정이 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퐁네프(Pont Neuf)가 센강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16세기에 완공된 이 다리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동안 늘 새로운 모습으로 센강의 역사가 된 것이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보수중이던 모습이 때로는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강위의 조각 구름이 된 퐁네프는 고풍스러운 파리의 매력을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마력이 있었다.

센강 위의 화려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하태길 겸임교수
센강 위의 화려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하태길 겸임교수

유람선이 센강의 물결을 가르며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 아래로 다가갔다. 1896년 프랑스와 러시아의 동맹을 기념해 착공되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 1900)에 맞춰 개통된 이 다리는 화려한 황금빛 조각과 우아한 곡선미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건축적 정수를 담은 예술작품이었다. 특히, 밤이 되면 다리를 장식한 화려한 가로등이 켜지며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에 등장하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더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의 힘은 영화와 그림속에서도 주인공이 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빛은 꺼질 줄을 모른다.

유람선은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보는 미라보 다리(Pont Mirabeau)를 지나갔다. 뉴욕의 웅장한 자유의 여신상과는 달리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미라보 다리를 보자마자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구절이 떠올랐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의 시가 깃든 다리 아래로 시간이 흐르고, 문학이 띄워지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센강이 어둠에 잠기자, 강물은 점점 짙어지고 고요함이 더해졌다. 그 순간,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황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하는 에펠탑. 빛을 머금은 에펠탑의 모습은 강 위에 은은한 낭만을 선사하며, 생동감을 더하고 밤의 정취를 완성했다. 1889년, 많은 논란 속에 건설된 에펠탑이었지만 이제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처음엔 낯설거나 거부감을 주던 대상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결국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심리학적 현상! 이것이 바로 '에펠탑 효과'이다. 브랜드 전략에서도 에펠탑 효과는 적극 활용된다. 스타벅스는 매장, 텀블러, 머그컵 등 다양한 곳에 자사 로고를 노출시켜 소비자에게 친숙함을 심어준다. 코카콜라는 슈퍼마켓과 편의점에 전용 냉장고를 배치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각인시킨다. 드라마 PPL(Product Placement) 역시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이며, 유튜브와 SNS 광고에서 활용되는 리타겟팅(Retargeting)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익숙함이 친밀감을 만들고, 친밀감이 호감을 낳는 마케팅이다.

유람선에서 내려 트로카데로 광장(Le Trocadero et son esplanade)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1월의 바람에 얼얼해진 볼을 달래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고요하고 몽환적인 하얀빛으로 도시를 잠재우는 자정 무렵 시작되는 화이트 에펠(White Eiffel)을 기다리며.

템즈강을 지켜보는 런던아이. 하태길 겸임교수
템즈강을 지켜보는 런던아이. 하태길 겸임교수

◆템즈강에서 바라본 런던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로 런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세인트 제임스 파크(St. James' Park)로 향했다.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겨울의 고요 속에서도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호수 위로는 런던아이(London Eye)의 커다란 휠이 반짝이며 비쳤고, 그 주변을 수많은 백조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검은 깃털을 가진 블랙스완도 눈에 띄었고,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리게 하는 아기 오리들이 엄마 백조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고전 동화 속 장면처럼 사랑스러웠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평온한 산책을 하고 빅벤(Big Ben)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의 웅장한 첨탑이 점층법처럼 시야로 들어오니 여기가 런던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런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묵직한 시간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세월의 품격을 지닌 채 당당히 서 있었다.

템즈강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활기로 강변이 가득 차 있었다. 런던의 심장처럼 힘차게 뛰는 에너지였다. 빨간 공중전화부스 앞에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 회색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선명한 붉은 공중전화부스는 불꽃처럼 빛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 도로 건너편에서 빨간색 뉴 루트마스터(New Routemaster) 버스가 다가왔다. 토마스 헤드윅(Thomas Heatherwick)이 디자인한 이 버스는 전통적인 런던의 2층 버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클래식한 감성과 혁신적인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외관과 개방형 플랫폼 덕분에 뉴 루트마스터는 런던 도심을 더욱 편리하고 세련되게 연결하며, 또 하나의 붉은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마케팅 전략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이 버스는, 런던시 교통국(TfL)이 '런던의 아이콘을 재탄생시키다' 라는 컨셉으로 홍보하며 과거의 낭만과 현대적인 효율성을 동시에 강조했다. 특히 '런던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을 통해, 뉴 루트마스터는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이 버스는 런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며 관광객은 물론 런던 시민들에게도 필수 체험 코스가 되었다.

템즈강은 파리의 센강보다 강폭이 넓어서 자신감 가득하고 매너 좋은 신사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강은 역사를 존중하는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런던의 역사를 한 조각씩 담고 있었기에 나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유람선에 올랐다.

2층으로 올라서자 웨스트민스터 브리지(Westminster Bridge)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이 다리는 영국 하원의 상징색을 반영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옆에는 웅장한 빅벤이 도시의 시간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우뚝 서 있었고, 유람선은 점차 런던아이 방향으로 나아갔다. 2000년 새천년을 맞아 세워진 이 거대한 구조물은 천체를 관측하는 호기심 많은 눈이 되어 런던의 현대적 감각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어 유람선은 '여성의 다리'라는 별칭을 가진 워털루 브리지(Waterloo Bridge) 아래를 지나갔다. 이 다리는 2차 세계대전 중 남성 노동력이 부족했던 시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건설한 것으로, 그들의 헌신과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강 위에 우뚝 선 다리는 그날의 고된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듯했다. 강을 따라가다 보니, 물 위로 고개를 내민 듯한 사자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 시내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이 사자상은 오랜 세월 동안 도시를 지켜온 수호자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템즈강의 상징 타워브리지. 하태길 겸임교수
템즈강의 상징 타워브리지. 하태길 겸임교수

템즈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에 시선이 닿는다. 동요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속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이야기가 바로 이곳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 다리는 로마가 영국 지역을 점령했을 때 처음 세워졌다. 하지만 유속이 빠른 템즈강은 수백 년 동안 건축가들의 도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센 물살로 다리를 흔들었다. 동요 가사처럼 철, 은, 금까지 동원되었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이 다리에 가장 잘 어울린다. 수많은 실패와 도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런던 브리지는 오랜 역사를 견뎌낸 다리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세운 목재 다리에서 시작해 석조, 강철, 그리고 현대 공학까지 다리는 끊임없이 리브랜딩 (Rebranding) 되며 인간의 끈기와 도전 정신을 증명해 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다리에는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성공의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을 내재하고 있다. 이제는 다리 아래 새겨진 글자들만이 그 역사를 말해주지만, 런던 브리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유지하며 여전히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하선 후 타워브리지(Tower Bridge)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타워브리지는 현대적인 가동식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고딕 복고 양식의 화려한 첨탑을 자랑하는 런던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다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타워브리지를 런던 브리지와 혼동하곤 한다. 파란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철제 구조물은 묵직한 석조 건축과 조화를 이루며 웅장함을 드러낸다. 특히 두 개의 거대한 탑은 중세 시대 요새를 연상시키며, 템즈강 위에 우뚝 솟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타워브리지는 웅장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기품 있고 장엄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정교한 디자인과 세심한 장식이 감탄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다리 위 유리 바닥 전망대에서 템즈강을 내려다보니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래로 지나가는 배들과 빠르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템즈강과 함께해온 런던의 매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를 건너 테이트 모던(Tate Modern)으로 향했다. 오래된 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 모던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그 자체로 런던의 예술적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한때 런던의 심각한 환경 오염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과거 테이트 모던이 위치한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며 심각한 대기 오염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런던은 '안개의 도시(Smog City)'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템스강 역시 산업화로 인해 오염이 극심해지면서 한때 '죽은 강'이라 불릴 정도로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하지만 런던은 이러한 오명을 벗기 위해 지속적인 환경 개선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뱅크사이드 발전소가 폐쇄된 후 이를 친환경적인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브랜드 리포지셔닝(Brand Repositioning) 전략과 함께 그린 마케팅(Green Marketing)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속 가능성과 환경 보호를 강조하는 메시지까지 전달함으로써 테이트 모던은 친환경적 이미지와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구축할 수 있었다. 이는 공간 변화를 넘어, 런던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며 현대적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징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예술과 환경이 공존하는 런던의 모습에서 스모그로 가득했던 오염된 도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잔잔한 물결 위에 반사된 불빛은 템즈강을 단단히 빛나게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발걸음을 멈추고, 전통이 흐르는 템스강을 바라보며 런던의 밤과 작별했다.

파리와 런던 여행은 강이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런던의 템즈강처럼 빠르고 역동적인 자세로 때로는 파리의 센강처럼 조용하고 느긋하게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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