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때로는 유연하게, 과하지 않게…400년을 넘어 온 삶의 지혜

[책] 초역 채근담
홍자성 지음/유키 아코 엮음/박재현 번역/부키 펴냄

나무 뿌리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
'초역 채근담' 책 표지

빠르고 즉각적인 자극에 도달하기 쉬워진 세상에서 분명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올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키워드 중 하나는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다. 이전 트렌드로 꼽히던 '소확행' 역시 언젠가부터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수단들로 방점이 옮겨가며 과시적 소비의 도구가 됐다. 이에 되레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등 행복에 관한 사회 담론이 변하고 있다.

시대·세대를 불문하고 건강 관리 분야는 늘 관심을 받아왔지만, 최근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있다면 '저속노화'다. 말 그대로 최대한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들기 위해 노화를 늦추는 지속 가능한 생활 습관을 추구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의 재밌는 부분은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대상이 주로 2030 세대라는 점이다. '안티에이징' 개념과의 차이가 있다면 억지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나쁜 습관을 천천히, 자연스럽게 개선해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기술 발전으로 더 빨리, 많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를 돌보기 힘들어지는 데서 오는 가속노화에 맞서기 위함이기도 하다. 저속노화 개념과 그 필요성을 알린 데에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역할이 크다. 미디어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식단,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 조언하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채근담'을 꼽는다. 400년 전 중국 명나라 학자 홍자성이 쓴 이 책은,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의 책이지만 '동양 최고의 잠언집'이라는 평을 받으며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인생 책'으로 두고 탐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개 내내 균형잡히고 간소한 삶의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저속노화 생활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이 풀뿌리(채근)만 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에서 따온 제목처럼 책은 어떠한 현실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법을 이야기한다. 이는 저자가 계속해서 '균형'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홍자성이 살았던 명나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떠올려보면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고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험난한 시대를 무사히 건너려면 원칙과 이상만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때로는 몸을 낮추며 견디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균형잡힌 유연한 처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도 유교에 뿌리를 두지만 불교와 도교에도 식견을 갖췄던 그는 어느 한 가지 사상만을 고집하기 보단,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 된다면 어느 것이든 융통성 있게 취한다.

다시 말해 채근담은 여러 상황과 복잡한 심리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매 순간 적절한 조언을 건네는 유연한 책이다. 이번에 출간된 '초역 채근담'은 총 359편의 글로 이루어진 원전에서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220편을 엄선해 쉬운 현대어로 풀어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생각대로 되었다고 기뻐하지 말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늘리려고만 하는 사람은 온갖 것에 자신을 옭아매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총 7부로 나눠진 책은 개인적인 삶의 태도, 자기 통제부터 점차 인간관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시선을 확장해나간다. 균형잡힌 처세에서 나아가 삶은 고난과 행복의 연속된 흐름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성공과 실패에, 타인의 평가에, 행복과 불행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라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마음과 생활이 어지러울 때. 어딘가 균형이 어긋났을 때. 사소한 일에도 공연히 마음이 흔들릴 때. 눈길 가는 대로 책의 어느 페이지든 펼쳐 풀뿌리 씹듯 음미해 보길, 내 삶에 적용해 단단하고 건강한 일상을 꾸려나가길 권해본다. 264쪽, 1만8천원.

나무 뿌리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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